[ 최승욱 기자 ]
“위 문화유산은 서울시민의 기억과 감성이 담긴 가치 있는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 서울특별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하였기에 이 인증서를 드립니다.”
NH농협은행 종로지점은 2014년 12월31일 서울시장으로부터 이 같은 내용의 인증서를 받았다. 종각역 부근 안국동에 자리 잡은 이 건물은 지나가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존재감을 지니고 있다. 붉은 벽돌에 흰색 머리띠를 두른 듯한 외관부터 독특하다. 벽돌에 남아 있는 생채기들은 90년간의 풍상을 보여준다. 현재 용도가 은행인 만큼 과거에도 금융회사 건물이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2개 신문사 사옥으로, 해방 직후에는 정당 사무공간으로 활용됐다. 근·현대사의 여러 족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건물은 1925년 10월29일 기공식을 했다. 지상 2층에 1057㎡ 규모의 벽돌조에 목조 트러스 지붕구조로 지어졌다. 벽돌에 의한 조적조 내력벽체로 건축돼 창호는 좁고 긴 모습으로 디자인됐다. 당시 건축주는 조선일보사였다. 1926년 7월5일 준공된 뒤 7월8일 낙성식을 열었다. 사옥 신축을 기념하는 피로연은 당시 명월관과 함께 쌍벽을 이룬 식도원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1924년 조선일보 사장으로 추대된 뒤 당시 새롭게 대두한 자치론을 저지하고 완전독립을 민족운동노선으로 정립하기 위해 노력한 월남 이상재 선생과 김활란 여사 등 25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1920년 대정친목회를 모체로 창간된 조선일보는 자금 문제로 여러 차례 소유권 변동이 있었다. 금광업에서 큰돈을 번 뒤 1932년 조선일보에 들어온 계초 방응모는 1933년 신석우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 사옥의 소유권이 방응모에게 있는지, 아니면 이전 소유자이자 조선일보 주주였던 최선익에게 있는지를 놓고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재판 결과 조선일보 사옥은 최선익의 개인소유물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최선익은 1933년 3월 중앙일보의 제호를 바꿔 창간한 조선중앙일보에 출자하면서 편집인 겸 발행인을 맡았다. 이 과정에서 조선일보 사옥은 조선중앙일보 사옥으로 변경됐다. 조선중앙일보는 1933년 6월18일 종로구 견지동 60번지에서 견지동 111번지 전 조선일보 사옥으로 이전했다. 조선일보도 1934년 4월 태평로에 사옥을 준공했다.
당시 일간지 중 최초로 체육면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중앙일보는 1936년 8월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딴 소식을 전하면서 손 선수의 가슴에 달려 있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게재했다. 동아일보도 일장기가 지워진 사진을 실었다. 두 신문사는 총독부로부터 동시에 정간 처분을 받았다. 조선중앙일보는 1937년 11월 장기 휴간에 따른 발행권 소멸로 폐간됐다. 신문사 사옥으로서 용도가 끝난 뒤 어떻게 사용됐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광복 이후 이 건물은 옛 농업은행 경기도 분실(또는 지점)로 사용되다가 1959년 11월 자유당 중앙당사로 이용됐다. 자유당이 4·19혁명으로 몰락한 뒤 5·16 군사정변 이후 국가재건회최고회의에서 설립한 중소기업은행이 농협에서 분리되면서 중소기업은행이 1961년 8월부터 이 건물을 빌려 본점으로 사용했다. 중소기업은행이 1968년 11월 을지로에 본점을 신축해 이전하면서 이 건물은 다시 농협이 이용하게 됐다. 1970년부터 종로지점으로 활용 중이다. 격동의 한국사가 응축된 건물이 아닐 수 없다.
현재 건물은 외관이나 형상에서 90년 전 준공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유지하고 있다. 다만 중앙 상부에 회사 사기(社旗)를 달던 금속깃대봉이 철거됐고 진입부와 중앙부에서도 일부 변형이 이뤄졌다. 창호는 목재에서 알루미늄 창으로 바뀌었다. 외부 벽돌 벽면에는 유지보수 과정에서 페인트가 덧칠해졌다.
종로지점은 2003년 증·개축에 나서면서 전면과 양 측면의 외관만 현 모습을 유지한 채 내부와 후면부를 철거한 뒤 창호와 출입문, 현관 부분의 디자인과 재질을 바꾸었다. 지붕마감재도 금속 재질로 변경했다. 지하 1개 층을 증축하고 건물 뒷부분도 새롭게 건축했다.
조선일보와 조선중앙일보 옛 사옥은 2013년 국가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충시설로 지정됐다. NH농협은행이 2014년 원래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외관 공사 등을 했다. 서울시는 이 건물이 지니는 역사적 상징성과 의미를 인정해 서울 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최승욱 특집기획부장 swcho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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