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판결 앞두고
금감원, 지급 거부땐 엄정 조치
보험사 "대법 판결 기다려보자"
[ 김일규 / 윤희은 기자 ] 금융감독원이 23일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 2003억원(지연이자 포함)을 보험수익자 2314명에게 모두 지급하라고 생명보험회사에 주문했다.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2심 법원 판결까지 나온 상황에서 금감원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쟁점은 시효 지난 보험금 지급
이번 갈등은 2014년부터 이어진 자살보험금 수익자와 보험사 간 소송에서 비롯됐다. 쟁점이 된 부분은 일반사망보험금을 기술한 주계약에 더해 추가 가입하는 ‘재해사망 특별약관’이다. 재해특약은 각종 재해로 인한 사망에 대해 보험금을 2~3배 더 지급하는 계약이다.
보험사들은 2010년 4월 이전에 판매한 상품의 재해특약에 피해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하면서도 ‘정신질환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태에서 자살한 경우나 특약 보장개시일로부터 2년이 지난 뒤 자살한 경우에는 그렇지 않다’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 이에 보험수익자들은 약관대로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소송을 냈고, 보험사들은 “문제의 약관은 2010년 표준약관 개정 전 실수로 포함된 것”이라며 “자살을 재해에 포함시킬 수 없다”고 맞섰다.
대법원은 지난 12일 보험사가 특약대로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 논란이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소멸시효 문제가 다시 불거졌다.
○금감원 “시효 지난 것도 지급”
대법원 판결에도 소멸시효가 지난 보험금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보험사의 주장이다. 상법은 보험금청구권을 2년 이상(2015년 3월 이후부터 3년 이상) 행사하지 않으면 시효 완성으로 본다. 14개 보험사의 미지급 자살보험금 2465억원(2980건) 가운데 소송 중인 건을 제외하고 소멸시효가 지난 것은 2003억원(2314건)에 달한다.
그러나 금감원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보험금 2003억원을 포함해 2465억원을 모두 지급할 것을 요청했다. 애초 약관에 따라 알아서 지급했어야 할 보험금 중 일부만 지급하고도 수익자가 따로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것은 보험사들의 억지 주장이라는 게 금감원의 견해다. 권순찬 금감원 부원장보는 “2014년부터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도록 지도했지만 보험사들이 대법원 판결 때까지 지급을 미뤘다”며 “그 사이 80% 이상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주장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소멸시효가 완성된 휴면보험금을 보험가입자에게 지급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살보험금도 지급해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판단이다. 권 부원장보는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거나 늦추는 보험사는 엄정 조치하겠다”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보험사 “배임 문제 야기될 수도”
보험사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직 법적 다툼이 끝나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이 난 뒤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A보험사 관계자는 “소멸시효와 관련한 여러 판결에서 2심까지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의무 없다는 판단이 많았다”며 “대법원 판결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 기본적인 방침”이라고 말했다. 최근 서울중앙지법도 시효가 지난 자살보험금은 지급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B보험사 관계자는 “미리 지급했다가 나중에 안 줘도 되는 상황이 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느냐”고 지적했다. 그는 “법원 판결에 따라 지급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은 보험사로선 일종의 배임이 될 수 있다”며 “상장회사인 경우 주주 이해관계에도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일규/윤희은 기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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