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 좌동욱 기자 ] “500조원을 굴린다는 국민연금의 투자 사후관리와 리스크관리 능력이 겨우 이 정도 수준입니까.”
지난 5개월여간 국내 3위 케이블TV업체인 딜라이브(옛 씨앤앰)의 선제적 구조조정 과정을 지켜봐 온 국내 대형 시중은행들이 공통적으로 내놓는 평가다.
딜라이브는 기존 인수금융 2조2000억원 중 8800억원을 상환전환우선주(RCPS)와 같은 우선주로 출자전환하고, 나머지 대출금을 금리를 낮춘 뒤 만기를 3년 연장하는 채무 재조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회사의 영업이익이 2012년 말 1600억원에서 2015년 말 739억원으로 급감하고 있는 데 따른 대책이다.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등 대형 시중은행뿐 아니라 금융권에서도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는 대형 보험회사들도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동의서를 써줬다.
놀랍게도 국민연금공단 내부의 상당수 운용역들도 이런 의견에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조직’으로서의 공단은 도무지 움직일 기미가 없다. “워크아웃, 법정관리 상태가 아닌 기업에 대한 대출 채무재조정은 첫 사례인 만큼 신중하게 결정 ?수밖에 없다”는 태도다.
대주단은 국민연금이 올해 초부터 진행해 온 실무 논의에 참여하고도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관련 안건을 두 차례나 부결 또는 보류한 사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기보다는 감사원이나 국회 등에서 제기될 투자 실패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데 급급하다는 것이다. 안건 부결 이유 중 하나가 “회의에 비상근으로 참여하는 대학교수 출신 외부 전문위원의 반대 때문”이라는 얘기를 전해 듣고는 아연실색하고 있다.
국내 1위 통신사(SK텔레콤)와 국내 1위 케이블TV업체(CJ헬로비전)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전격 합병하고 있는 유선방송 시장의 치열한 경쟁 여건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한시라도 늦출 수 없는 것이 딜라이브의 구조조정이다. 국민연금은 내부방어 논리에 지나치게 함몰돼 대우조선해양처럼 구조조정 적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짚어 볼 필요가 있다.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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