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락 IT과학부 기자) 세계 최대 기업용 소프트웨어 회사인 SAP의 빌 맥더멋 최고경영자(CEO·55)는 한쪽 눈을 볼 수 없습니다. 지난해 7월 계단에서 넘어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해 왼쪽 눈을 잃었기 때문이죠. 지금 눈은 인공 안구입니다.
그는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올랜도에서 열린 SAP의 최대 연례 콘퍼런스인 ‘사파이어 나우’에 기조연설자로 나섰습니다. 맥더멋 CEO가 실명한 뒤 처음으로 대중에게 모습을 드러낸 자리였죠. 그가 기조연설 내내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작년에 사고가 났을 당시 회사 수뇌부는 CEO 교체까지 고려했다고 합니다. 맥더멋 CEO가 미국에서 사고를 당했는데 비행기를 타지 못해 독일 SAP 본사로 돌아올 수조차 없었던 심각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맥더멋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은 CEO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고 결국 자리를 지켰습니다.
맥더멋의 강인함과 집요함은 사내에서 이미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른바 ‘흙수저(가난한 집안)’ 출신입니다. 맥더멋은 1961년 미국 뉴욕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났습니다. 가정 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의 아버지는 새벽부터 밤늦도록 지하에서 케이블을 까는 노동자였고, 그가 살던 집은 너무 낡아서 비가 오면 바닥이 흥건히 젖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돈을 벌어야만 했던 맥더멋은 열일곱 살에 식료품 가게를 직접 운영하게 됩니다. 맥더멋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 식료품 가게의 전 주인이 인수 비용 대부분을 빌려줬고, 이익이 나면 나눠 갖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는 돈을 벌어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학비를 마련했습니다. 맥더멋은 “나의 원동력은 가난과 허기였고 뭐 하나 공짜로 손에 쥔 것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뉴욕 다울링대를 거쳐 노스웨스턴대 켈로그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습니다. 이후 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에서 최고경영자 과정도 이수합니다. 맥더멋의 첫 직장은 복사기로 유명한 제록스였습니다. 제록스에서 17년 동안 일하면서 최연소 부문장을 맡으며 맹활약했다고 하네요.
그는 제록스를 나와서는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SAP로 옮긴 것은 2002년이었죠. 맥더멋은 2010년 CEO 자리까지 오르고 이후 회사의 성장을 이끕니다. 현재 SAP는 세계 190여개국에 29만6000곳 이상의 고객사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전사적자원관리(ERP) 프로그램과 공급망 관리 프로그램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회사입니다.
맥더멋은 지난해 사고 이후 CEO직을 유지하기로 하면서 한 일간지에 “나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사고 이전보다 훨씬 열정적이고 강하다고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한 인터뷰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큰 부자가 될 수 있다. 나는 기회를 낚아채기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중요하지 않은 수많은 일로부터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이번 행사에서 열정적인 모습으로 연설하는 맥더멋 사진들을 함께 첨부했으니 그의 모습을 보시길 바랍니다. (끝)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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