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장편소설 《종의 기원》 출간한 정유정 씨
"내 안의 악이 어떻게 점화되고 진화하는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 양병훈 기자 ] “평범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과정을 그린 ‘악인의 탄생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정유정 씨(50·사진)는 오는 14일 출간하는 장편 《종의 기원》(은행나무)을 이렇게 요약했다. 정씨는 국내에서 가장 많은 고정 독자를 둔 소설가로 꼽힌다. 2011년 《7년의 밤》은 40만부, 2013년 《28》은 20만부 이상 팔리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그가 3년 만에 내는 《종의 기원》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4일 시작한 인터넷 예약판매에서 한정판 양장본 5000부가 1주일 만에 다 팔렸다. 대형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선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진희 은행나무 편집주간은 “예약판매 중인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건 한국 문단 사상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전작들처럼 《종의 기원》에서도 극한 범죄 상황을 설정하고, 그 상황을 겪으며 등장인물의 내면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그렸다. 전작들에선 작가가 한발 떨어져 악인을 관찰하는 내용인 데 비해 이번 작품에선 악인의 심리 변화를 낱낱이 파헤쳐 독자에게 보여준다.
소설은 잠에서 깨어난 주인공이 지난밤에 처참하게 살해된 어머니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모든 게 베일에 싸여 있다. 주인공은 퍼즐을 맞추듯 진실의 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간다. 이 과정에서 의문을 하나 해결하면 즉시 또 다른 의문을 던지며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한다. “누가 어머니를 죽였을까”란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자마자 “어머니가 왜 어제 그런 행동을 했을까” “그는 어젯밤에 사라진 두 시간 반 동안 뭘 했을까”라는 의문을 계속 던지는 식이다.
정씨는 이 작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진 ‘악한 본성’에 대한 얘기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은 생존 본능을 지녔는데 선이나 악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었기에 선과 악이 함께 진화했다”며 “악은 우리 유전자에 내재된 어두운 본성”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책을 통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가는지 보여주고자 했다”며 “이를 똑바로 이해하고 응시해야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씨는 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전체 줄거리를 세 번 다시 썼다고 했다. 그는 “보통 플롯이나 문장, 묘사 수정은 수도 없이 하지만 이야기 자체를 세 번 부순 건 2009년 《내 심장을 쏴라》 이후 처음”이라고 말했다. “순수한 악인은 윤리에 구애받지 않는데도 제가 어렸을 때부터 배운 윤리적 세계관 안에서 그를 묘사하려고 했기 때문이었죠. 작가로서 충분히 자유롭게 사고한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세 번째 다시 쓸 때에야 그걸 비로소 인정할 수 있었습니다.”
윤리적인 소양이 없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묘사한 대목이 흥미진진하다. 예컨대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해준 뒤 죽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목숨을 구해줬으면 나를 칭찬해줘야 하는데 왜 그러지 않지?’라는 의문을 가진다. 생각의 모든 초점을 ‘나에게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로 맞춘 모습이다.
책을 미리 받아 읽어본 이나미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인간 심성의 황폐함이 이렇게까지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날것 그대로 보여준다”고 평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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