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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포럼] 백독회와 북코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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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서울 뚝섬역 부근의 한적한 골목. 한강변 서울숲과 키 낮은 공장 사이에 ‘카페 성수’가 있다. 이곳에서 목요일 저녁마다 특별한 모임이 열린다. 100번 읽어도 좋은 책을 100번쯤 읽어보자고 시작한 백독회(百讀會). 그동안 50여차례 모였으니 벌써 1년이 됐다.

회원은 12명. 모임의 좌장 격인 이수형 청강문화산업대 미래원장을 비롯해 연극연출가, 화가, 변호사, 교수, 한복디자이너 등 직업도 다양하다. 전업주부도 있다. 이들은 저마다 작품 주인공이 돼 울고 웃고 안타까워한다. 목소리도 각양각색이다. 묵직하고 낮은 바리톤형, 느릿하면서도 맑은 미성, 변론하듯 또박또박 읽는 논리형 등 다채롭다.

매주 모여 책으로 세상 읽기

처음 선택한 책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Walden)》. 한 번 읽는 데 2개월 반이 걸렸다. 처음엔 그냥 읽었지만 갈수록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읽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단어와 행간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왔다. 몸과 마음의 감각들도 살아났다.

그렇게 두 번을 읽고 나자 다른 책들에 눈이 갔다. 잠깐 쉬어갈 겸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펼쳤다. 내친김에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도 읽었다. 지금은 올리버 색스의 《모자를 아내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있다. 이를 계기로 소설(화), 역사인문학(수) 읽기 모임도 생겼다.

백독회의 숨은 산파는 이 모임의 회원이기도 한 김보경 ‘문학다방 봄봄’ 대표다. 《낭독은 입문학이다》의 저자인 그가 3년 전 신촌 기차역 옆 이화여대 골목에 봄봄을 열고 날마다 독서모임을 갖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다니, 책마을 식구들이 또 다른 책마을을 일군 셈이다.

김 대표는 7년 전 삼성경제연구소의 트렌드연구회를 이끌다 ‘두껍거나 어려운 책 함께 읽기’를 제안했다. 그때 모인 20여명을 모태로 여러 모임을 꾸렸다.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840쪽)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750쪽) 같이 두꺼운 책은 몇 달에 걸쳐 읽었다.

전국 40여곳 확산…군인들도

봄봄의 독서모임은 요일별로 특화돼 있다. 월요일은 묵직한 책을 읽는 북코러스, 화요일에는 소설 읽는 낭낭스, 수요일엔 피터 드러커 낭독회, 목요일엔 동양고전낭독회, 금요일엔 심야책방, 토요일엔 글쓰기 모임이 있다. 일요일에도 모여 동서양 고전과 성서를 읽는다.

탁자 몇 개를 붙여 놓고 둘러앉아 10여명이 책을 읽는 모습은 참 보기 좋다. 연령대는 20~30대부터 60대 이상까지 폭이 넓다. 회사원, 여행사 대표, 교수 등 직업도 갖가지다.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두 시간 동안 흐트러짐 없이 집중한다.

이런 열기에 힘입어 전국에 책 읽는 모임이 40여군데나 생겼다. 군대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 공수부대 병사는 동료들과 새벽 낭독 모임 ‘돌독’을 꾸렸다. 그의 독서열에 감명받은 부대장이 세워준 영내도서관의 관장까지 맡아 화제를 모았다.

이들은 함께 책을 읽다 보니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승진이나 돈벌이에 직접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묻혀 있던 열정을 되찾고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됐으며 가족과도 따뜻한 공감대를 갖게 됐다고 입을 모은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응원하는 법도 배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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