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은 대부분 영토가 넓고 자원이 많은 나라다. 드넓은 평원을 자랑하는 아르헨티나만 하더라도 20세기초 세계의 부국(富國)중 하나였다.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이 탄핵당할 처지(브라질)거나, 세계에서 국민 삶이 가장 비참(베네수엘라)하거나, 여러차례 국가부도(아르헨티나) 위기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왜 그럴까? 남미 여러 나라에서 최근 좌파 정권들이 줄줄이 퇴진하고 있는 것은 대중인기영합(포퓰리즘)적 정책이 순간은 달콤하지만 결국은 나라를 망치고 후손들의 삶의 터전을 앗아가는 마약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국회의 탄핵으로 쫓겨날 위기에 몰렸다. 지난 17일 브라질 하원은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 지난해말 정부의 회계부정 사건이 드러나고 고위직들이 줄줄이 연루된 국영 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 관련 부패 스캔들이 확산되면서 탄핵 여론에 불을 질렀다. 탄핵안이 상원에서 최종 가결되면 호세프 대통령 직무는 정지되고 미셰우 테메르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대행하게 된다. 호세프 대통령은 군사독재 정권에 맞서 20여년간 무장 게릴라로 활동했던 ‘여전사’였다. 호세프의 추락은 곧 중남미 좌파의 대부격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의 몰락과도 같은 것이다. 룰라 전 대통령도 부패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0일 치러진 페루 대선에서는 중도우파 성향의 게이코 후지모리 민중권력당 후보가 1위를 차지해 6월 결선투표를 앞두고 있다. 지난 2월에는 볼리비아에서 최장 기간 집권 중인 좌파 성향의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이 개헌에 실패하면서 4선 도전이 좌절됐다.
남미 좌파 정권의 상징인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2013년 3월 사망)이 이끌었던 베네수엘라도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중도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민주연합회의가 집권 사회당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면서 좌파 정당이 16년만에 다수당에서 밀려났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이끄는 집권 사회당은 전체 167석 중 46석만 얻어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운영할 수 없는 처지다. 민주연합회의는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해 전방위 압박에 들어갔다. 차베스 전 대통령의 ‘후계자’로 통하는 마두로 대통령은 저유가로 인한 나라살림 악화와 연 85%가 넘는 살인적인 물가상승 등 혹독한 경제위기를 겪으며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중도우파 성향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이 당선되며 12년간의 좌파 부부 대통령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전임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2007~2015년 집권)은 남편인 네스토르 키르치네르 전 대통령(2003~2007년 집권·2010년 사망)의 포퓰리즘 정책을 이어받았다. 하지만 연이은 경제 실정과 과도한 복지예산 지출로 2014년부터 사실상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다. ‘페론 포퓰리즘’이 70년간 지배한 아르헨티나에서 국민들이 변화 ?선택한 건 분에 넘치는 복지의 끝은 경제 파탄뿐이란 걸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남미에서 이처럼 좌파의 상징인 ‘분홍 물결(pink tide)’이 퇴색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멕시코 외무장관을 지낸 호르헤 카스타녜다 뉴욕대 교수는 “좌파 정권들의 잇단 패배는 주로 경제적인 현실 때문이지만 너무 많은 남미 좌파 지도자가 고질적인 부패의 덫에 걸려들었고 국민들의 눈높이를 과소평가한 것도 한 이유”라고 지적했다. 김원호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국제 원자재 가격이 폭락하면서 선심성 정책 유지가 어려워졌고, 국가경제도 악화된 게 최근 무너진 남미 좌파 정권의 공통점”이라고 말했다.
남미 좌파 정권의 몰락은 우리에게 반면교사다. 남미 경제의 근본적 문제점은 정치 지도자들이 당장은 힘들더라도 허리띠를 졸라매 산업을 키우고 일자리를 늘리는데 앞장서기 보다는 시혜를 베풀듯 선심성 정책을 퍼부어 국민들을 현혹했다는 데 있다. 저성장의 고착화, 제조업 경쟁력의 추락,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등 민생은 갈수록 팍팍해지는데 당리당략과 집안 싸움에 매몰돼 있는 국내 정치권에도 경종을 울리고 있다.
◆남미 좌파 정권의 몰락에서 얻는 교훈
브라질 경제가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탄핵에도 침체 국면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에 힘이 실리고 있다. 18일 브라질 일간지 폴랴 지 상파울루 등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피치 등 3대 국제 신용평가사는 “호세프 대통령의 탄핵 여부와 관계없이 브라질 경제가 침체기에서 벗어나려면 최소한 2018년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4월20일 한국경제신문
강현철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hc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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