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무임승차 꼴 못 본다"
러시아·이라크 "매우 실망"
[ 이상은 기자 ] 사우디아라비아는 왜 갑자기 태도를 바꿨을까.
사우디와 러시아를 포함한 18개 산유국이 지난 17일 카타르 도하에서 석유 생산량 동결을 논의했지만 시장의 예상과 달리 합의에 실패했다. 그 후폭풍으로 18일 국제 유가가 6.6% 급락하고 자원생산국의 통화 가치가 떨어지는 등 시장이 요동쳤다.
도하 회의 하루 전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동결 합의문 초안을 입수해 보도했다. 이 초안에는 산유국들이 지난 1월 생산량 기준으로 오는 10월까지 생산량을 동결하기로 약속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FT는 사우디도 합의문 초안 작성에 참여한 것으로 보이지만, 막판에 태도를 바꿨다고 전했다. 경쟁 산유국인 이란이 참여하지 않으면 동결 합의를 할 수 없다고 버틴 것이다.
이란은 애초 도하 회의에 불참한다고 했다. 1월 서방의 핵 관련 제재에서 풀려나자 제재 전 수준의 산유량(하루 420만배럴)까지는 생산량을 늘려가야 한다고 시종일관 주장해왔다.
사우디의 표변에 그간 동결 논의를 주도해온 러시아는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알렉산드르 노바크 러시아 에너지부 弱活?“일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이 아침에 태도를 바꿔 오늘 많은 언쟁이 있었다”며 “사우디의 요구는 비합리적”이라고 비판했다. 파라 알람리 이라크 대변인도 “우리는 매우, 매우 실망했다”고 밝혔다.
FT는 사우디가 태도를 바꾼 배경으로 30세인 모하메드 빈 살만 부왕세자를 지목했다. 그는 지난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란 없이는 동결에 합의하지 않겠다며 이란이 동결 합의에 ‘무임승차’하는 것을 견제했다. FT는 사우디 내에서 그의 발언권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합의 불발 소식이 전해진 직후 유가는 아시아 시장에서 6.6% 급락했다. 지난 12일 배럴당 42.17달러까지 치솟았던 서부텍사스원유(WTI·1개월 선물)는 이날 37.7달러까지 떨어졌다가 38달러대에 거래됐다. 12일 44.69달러까지 올랐던 브렌트유(2개월 선물)도 이날 40.85달러까지 내려갔다가 41달러대로 낙폭을 줄였다.
동결 불발로 산유국들은 기존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유가 하락을 감수하면서 생산량을 줄이지 않는 ‘치킨게임’ 국면으로 다시 돌아갔다. 프랑스 나티시스은행의 아비세크 데쉬판데 원유 애널리스트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30달러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그렇더라도 지난 1월 말~2월 초처럼 배럴당 20달러대 유가를 다시 볼 가능성은 높지 않을 전망이다. 쿠웨이트 정부가 공공부문 임금을 깎기로 해 파업이 벌어지는 통에 쿠웨이트 산유량이 당분간 줄어들 가능성이 높은 데다 미국 등의 셰일오일업계가 생산량 감축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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