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강진으로 1000여명의 사상자가 난 일본 규슈 구마모토(熊本)에서 여진이 계속되고 있어 걱정이다. 이곳 명물인 노면전차 운행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 전차 노선 중에 ‘우루산마치’라는 특이한 이름의 역이 있다. ‘울산(蔚山)마을’의 일본 발음인데, 조선인들이 모여 살던 동네라고 한다. 어찌된 사연일까.
정유재란 때 왜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는 남부 지역을 휘젓다가 1597년 11월 울산에 진을 쳤다. 그는 추위에 대비하고 전투 거점으로 삼기 위해 성을 쌓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학성동(鶴城洞)에 있는 울산성이다. 성의 완공 직후 이곳에서 정유재란 최대 전투가 벌어졌다. 조·명 연합군 5만명에 포위돼 죽음 직전까지 내몰린 그는 구원군의 도움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절치부심하며 구마모토로 돌아온 그는 울산성 전투를 거울삼아 가장 견고한 성을 쌓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것이 일본 3대 성(城)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이다. 축성 과정에서 조선인들의 기술을 적극 활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울산 사람이었고, ‘우루산마치’에 터를 잡고 살았을 것이다. 성의 위력은 1877년 발생한 세이난( ㅡ?전쟁 때 확인됐다. 규슈 남부의 사쓰마번 영주가 이끄는 군대 약 1만3000명에게 52일간 공격을 받았는데도 끄떡없었다. 이를 계기로 난공불락의 철옹성으로 유명해졌다.
이 성을 둘러싼 돌담은 일본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그만큼 가치가 높은데, 이번 지진으로 돌담 약 100m가 허물어지고 균열이 생겼다. 성의 중심 건물인 천수각(天守閣) 지붕 기와도 무너져 내렸다. 성 전체에서 먼지구름이 뽀얗게 피어오르는 모습까지 목격됐다. 축성 400주년인 내년까지 성을 온전하게 복원하려던 작업도 차질을 빚게 됐다.
그렇잖아도 지난해 인근 아소(阿蘇)산(1592m)의 폭발로 혼비백산했던 사람들이다. ‘불을 뿜어내는 산’이라는 뜻의 아소산은 분화구가 백두산의 10배에 달한다. 서울까지의 직선거리가 불과 650㎞로 도쿄(900㎞)보다 더 가까운 곳 아닌가. 직선거리로 300㎞밖에 안 되는 부산에서 그저께 지진 감지 신고가 137건이나 접수됐다니 더욱 실감이 난다.
다행히 생후 8개월 된 아이의 구조 소식 등 반가운 뉴스가 들리고 있다. 빠른 복구와 안전을 기원하는 각국의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다만 그 와중에 한국인을 겨냥한 악성 루머를 퍼뜨리는 사람도 있다니 씁쓸하긴 하다. 울산시와 자매 결연까지 한 구마모토인데 ….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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