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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은 경제 이야기] 암행어사 제도…조선시대, 지방 관리들의 도덕적 해이 막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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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항아리 속 향기로운 술은 천 사람의 피요. 옥쟁반 위 맛있는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이 흐를 때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성 또한 높더라.”

고전소설 ‘춘향전’에서 이몽룡이 암행어사 출두 전에 읊은 시구이다. 이몽룡은 이 시구를 남기고 사라졌다가 마패를 앞세우고 “암행어사 출두야!”를 외치며 다시 등장한다. 그리고 억울한 옥살이로 고초를 겪고 있던 연인 성춘향을 구하기에 이른다. 문학작품 속 암행어사는 이처럼 영웅적인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암행어사의 대명사 격인 박문수와 관련된 설화에서도 주인공은 억울한 누명을 쓴 백성을 구원하는 구세주로 묘사돼 있다. 우리에게 암행어사는 백성을 위해 악정(惡政)을 펼치는 수령(守令)을 척결하는 정의의 심판자였던 셈이다.

현실에서도 그러했을까. 암행어사가 누구이고 어떠한 임무를 수행했기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렬히 환영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들이 세상에 존재해야만 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조선을 비롯한 왕조시대에 백성을 다스리고 보살피는 일은 임금의 당연한 책무였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임금이라 해도 모든 일을 혼자서 다 처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은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어떤 수단이 필요로 했는데, 조선시대에?지방의 각 고을에 수령을 둬 왕의 통치를 대신하게 했다. 왕조의 안위는 민심에 달렸고 민심은 백성이 얼마나 편안하냐에 달렸으므로 수령은 임금에게도 역시 중요한 존재였다. 수령의 임기를 보장하는 육기법(六期法)이나 하급관리나 백성들이 수령을 고소하지 못하게 금지한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 등은 이런 이유에서 마련된 제도다.

문제는 이토록 막대한 권한과 엄청난 특권이 부여됐음에도 모든 수령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린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관찰사라 하여 수령의 통치를 평가하고 이를 왕에게 보고하는 감시자가 존재하기도 했다. 또한 한양에 사헌부라는 기관을 둬 수령을 규찰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해진 기일에 공개적으로 수령을 감독하고, 중앙에 앉아 전국의 고을 수령을 관리하는 일은 애초부터 그 효과가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다 보니 백성을 위한 위민정치(爲民政治)는 저버리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수령들이 등장하게 됐다. 수령들에게서 경제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거래당사자 간 보유한 정보의 양과 질의 차이(정보의 비대칭)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는 ‘감추어진 행동(hidden action)’에서 비롯된다. 어느 한 당사자의 행동을 다른 이가 일일이 관찰하고 관리·감독할 수 없을 때, 더 많은 정보를 가진 자는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자신의 이익만을 좇아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나타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가 ‘역선택(adverse selection)’이다. 상대방의 특성에 대해 잘 모르는 ‘감추어진 특성(hidden characteristic)’ 상황으로 인해 바람직하지 않은 당사자와 거래하게 되는 痼?바로 역선택이다.

그렇다면 역선택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도덕적 해이에 빠지지 않도록 거래 상대방에게 인센티브(incentive)를 제공하는 것이 방법일 수 있다. 수령이 왕의 바람대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 수 있도록 유인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법은 당시 제도적으로 이미 마련돼 운영되고 있었다. 조선시대 관찰사는 수령들의 실적을 매년 6월과 12월 두 차례에 걸쳐 4등급으로 구분해 평가하고, 이를 중앙에 보고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이렇게 보고된 수령들의 고과는 추후 승진에 있어 중요한 기준이 됐다. 또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조선시대 임금들은 육기법과 부민고소금지법 등을 통해 수령의 권위를 높이고 그들에게 안정적인 지위를 보장하고자 노력했다.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인센티브 구조가 어느 정도 마련돼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상대방의 감추어진 행동을 알아내려는 노력이다. 이를 ‘선별장치’ 또는 ‘골라내기(screening)’라 하는데, 정보가 부족한 자가 많은 이의 정보를 취득하기 위해 펼치는 행위를 말한다. 조선의 암행어사 제도가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 암행어사는 왕명을 받아 비밀리에 지방에 파견된 특사나 임시관리를 말한다. 이들이 맡은 임무는 수령의 치적과 비리를 살피고 백성의 고통과 어려움을 탐문해 왕에게 아뢰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명백한 부정이나 부패가 발견되면 암행어사는 해당 수령을 파직하고 증거 보존을 위해 관아의 창고를 봉인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강력한 권한이 부여된 탓에 수령의 부도덕과 부조리를 타파하는 데 있어 암행어사 제도는 꽤 효과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선결해야 할 과제가 있었다. 바로 암행어사의 신분을 비밀로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왕이 직접 어사를 선정임명하고, 그들이 파견 갈 지역을 추첨으로 결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더해 어사로 간택된 사람은 사대문을 벗어나고 나서야 비로소 자신의 임무와 파견지역을 알 수 있었고, 이를 확인한 후에는 지체없이 목적지로 떠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렇듯 치밀한 규칙과 절차에도 불구하고 암행어사 제도가 반드시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암행어사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령 개인의 비리를 밝혀내는 데 집중했을 뿐, 비리를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구조적 개혁에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또 신분이 도중에 노출돼 암행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이뿐만 아니라 암행어사 행세를 하는 가짜 어사도 등장했고, 심지어는 수령과 결탁해 스스로 도덕적 해이에 빠지는 비리 어사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조선사회에서 마패로 대변되는 암행어사가 쥐가 다니지 못하도록 안뜰에 풀어놓은 고양이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이다. 즉 암행어사는 비탄에 빠진 백성들이 비빌 수 있는 마지막 언덕이자 왕의 역선택을 막아주는 마지막 보루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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