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 이지훈 기자 ] 일본 도쿄에 사는 노인이 전기도 없이 하루 식비 몇 천원으로 살아가고 있다면? 일본 방송사 NHK 스페셜 제작팀이 펴낸 ‘노후파산-장수의 악몽’에 따르면 일본 홀몸노인 수가 600만명에 달하고, 절반은 빈곤 상태다. 심지어 이 중 200만명은 의식주 모두 자립 능력을 상실한 채 노후 파산의 삶을 살고 있다. 장수가 악몽인 시대를 미리 준비하라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일본인의 노후 수입원 중 공·사적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68%에 이른다는 점이다. 연금으로 고령화에 잘 대비한 일본조차 노후 파산이 현실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노후 수입원 중 공·사적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13%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나 사회보장제도 역시 일본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게다가 일본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르다.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계속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장수에 대비하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연금제도라고 말한다. 그런데도 연금이 활성화되지 않는 현상을 가리켜 ‘연금 수수께끼(annuity puzzle)’라고 부른다. 그래서 다른 선진국들은 사적 연금인 퇴직연금까지 일시금이 아니 ?연금으로 선택할 것을 강제화하는 경우가 많다. 일정 비율 내에서만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나머지는 연금으로 받도록 하거나, 연금을 기본 선택사항으로 두고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연금을 비롯해 퇴직연금, 개인연금까지 외형적으로는 3층 노후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고용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연금을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춘 55세 이상 퇴직자 중 7%만이 연금 수령을 선택했다. 수령 금액으로 따지면 전체의 3%에도 못 미친다. 도입 10년을 넘어선 퇴직연금제도가 실제로는 연금제도가 아니라 일시금제도로 운영되고 있다.
퇴직연금이나 개인연금 제도가 노후 재원으로 제 역할을 다하려면 개인이 연금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정부도 세제 혜택을 넘어 연금이 노후의 주요 수입원이 될 수 있는 근본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중도에 자금이 필요한 상황을 고려해 일정 비율 이하로는 인출을 허용하고 일부만이라도 노후 재원으로 남겨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나머지 금액은 연금 형태로 받도록 의무화하면 된다. 백세 시대를 목전에 둔 지금, 개인과 정부가 함께 나서 전략적으로 연금 수수께끼를 풀어가야 할 때다.
최은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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