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토피아 vs 유토피아 '프레임 전쟁'
"4차 산업혁명으로 판 자체가 바뀐다"
양쪽 색깔이 다른 눈동자란 뜻의 ‘오드 아이(odd-eye)’는 한경닷컴 기자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코너입니다. 각을 세워 쓰는 출입처 기사 대신 어깨에 힘을 빼고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풀어냈습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시선으로 독자들과 소소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 김봉구 기자 ] 그야말로 흥행 돌풍이다. 개봉 전이지만 대박은 보장됐다. 영화가 아니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이세돌 9단과 구글 개발 인공지능(AI) 알파고(AlphaGo)의 대국 얘기다.
오는 9일부터 15일까지 인간과 컴퓨터 최고수가 다섯 판 맞붙는 이 대결은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더구나 한쪽 주인공이 이세돌 9단이다. 비유하면 전세계 흥행이 보증된 할리우드 대작에 우리나라 최고 배우가 공동주연으로 캐스팅된 격이다.
‘사람과 기계의 대결’이라는 세기의 이벤트다. 영화와 달리 스포일러(내용이나 줄거리를 미리 밝히는 행위)가 흥미를 떨어뜨리지도 않는다. 승부는 누가 이기고 질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스포일러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저마다 나름의 근거를 들어 승부를 예측해보면서 한껏 기대치를 높이고 있다.
확실한 건 승부 결과가 우리 삶의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일견 한일전보다도 흥미로울 이번 대결을, 한편으로는 손에 땀을 쥐고 숨죽여가며 지켜보게 될 이유다.
AI가 인간 최고의 두뇌를 이길 수 있을까. 그리고 기계가 인간을 넘어선다면 그 시점은 언제가 될까. 이번 승부가 바둑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흥미로운 것은 이 질문에 대한 일단의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AI가 인간의 삶에 언제 어떻게 얼마나 개입할지 예측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올 초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에서부터 AI는 뜨거운 감자였다. AI와 IoT(사물인터넷) 등이 융합해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향후 5년간 일자리가 700만개 사라지고 200만개 생겨나 결과적으로 500만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게 다보스포럼의 전망이다.
하여 이세돌과 알파고의 맞대결은 다음과 같은 근본적 화두를 던진다. 기술이 발전해 도래할 ‘AI 시대’는 인간에게 디스토피아와 유토피아 가운데 어느 쪽일 것인가.
디스토피아적 관점의 핵심은 역시 일자리다. 이 9단이 진다고 하자. ‘로봇이 내 일을 대신하면 나는 뭘 하지?’ 또는 ‘AI가 인간을 능가하면 우리는 뭘 할 수 있을까?’란 충격적 질문에 지금 당장 맞닥뜨린다. 이세돌을 응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복잡한 속내도 자리하고 있을 터이다.
유토피아적 시각에서 AI는 영화 ‘아이언맨’의 쟈비스 같은 존재다. 인간 오감의 한계를 보완하는 아주 똑똑한 인공지능 개인비서. 이른바 협력적 모델이다. AI의 발달이 인간을 단순반복 노동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며, 기존 일자리를 없애는 만큼 개인 맞춤형으로 세분화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라 본다.
AI 전문가인 김대식 KAIST(한국과학기술원) 교수는 이렇게 풀이했다. “200여년 전 산업혁명을 통해 인간은 육체 노동을 기계에 아웃소싱(외주)했다. AI 혁명이 일어나면 대부분의 지적 노동마저 기계가 대체할 것이다. 시장경제, 자본주의, 민주주의 같은 현재의 사회시스템은 산업혁명에서 파생된 것들이다. AI 혁명으로 여기에도 또 다른 거대한 변화가 올 것이다.”
AI의 영향력이 기술 측면에 한정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총체적이며 파괴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란 예고이기도 하다.
사안은 단일하지 않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보하나 최종적 의사결정에는 사회적·구조적 층위, 문화적·윤리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AI가 불러올 인류의 미래가 디스토피아일지, 유토피아일지의 결론은 돌고 돌아 우리에게 온다.
관건은 어느 쪽의 프레임(틀)이 유효한 설득력을 얻느냐에 달렸다. 프레임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당신이 생각하는 AI의 미래는 어느 쪽인가.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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