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독점지위권 얻으며 불법 정치자금 '온상'으로
당시 에너지장관이었던 호세프 대통령 탄핵 위기
'브라질 영웅' 추앙받던 룰라, 비리혐의로 검찰 조사받아
[ 박종서 기자 ] 2014년 3월, 브라질의 한 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돈세탁업자’ 알베르토 유세프는 형량을 줄여주겠다는 검찰의 약속을 받고 브라질 최대 국영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비자금 내막을 털어놨다. 그가 비리 혐의자 명단이라며 전해준 종이에는 브라질 유력 인사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유세프는 “앞으로 (브라질)공화국이 뒤집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담당 변호사조차 반신반의하며 허풍이 섞였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유세프의 발언은 현실이 돼가고 있다.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사진)은 페트로브라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난해부터 탄핵 위기에 몰렸고, 지난 4일에는 ‘남미 좌파의 대부’이자 브라질 최고 대통령으로 손꼽혔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경찰에 강제구인돼 조사를 받았다. 브라질 연방법원은 지난해 12월까지 페트로브라스 뇌물 스캔들과 관련해 57명에게 징역형을 선고했다. 57명의 형량을 모두 더하면 680년 8개월에 이른다.
브라질 경제의 자존심이자 대들보였던 페트로브라스가 ‘비리의 복마전’이 됐다는 지적이다. 브라질 연방검찰은 페트로브라스의 비자금 규모가 30억달러(약 3조6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비자금 가운데 상당 금액은 호세프 대통령과 룰라 전 대통령이 몸담고 있는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노동자당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파악됐다. 브라질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호세프 대통령이 2003~2005년 에너지장관을 지냈고, 페트로브라스 이사회 의장을 맡았다는 이유를 들어 탄핵을 주장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페트로브라스가 ‘비리의 온상’으로 변한 시점을 2004년께로 추정했다. NYT는 “2003년 집권한 노동자당이 페트로브라스의 브라질 석유시장 독점권을 인정하면서 페트로브라스는 유전개발과 정유, 유류 도소매까지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며 “유전개발 등에 연간 200억달러를 사용하면서 하도급 건설업체로부터 뒷돈을 챙길 여지가 커졌다”고 분석했다. 페트로브라스는 하도급 업체에서 받은 돈을 정부 주요 인사와 유력 정치인에 상납했다. 하도급 건설업체들은 페트로브라스로부터 일감을 딸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정·관계에 직접 뇌물을 뿌리기도 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브라질 검찰은 룰라 전 대통령이 브라질 대형 건설업체 OAS 등으로부터 800만달러 정도를 받은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룰라 전 대통령은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연방경찰의 강제구인은 ‘미디어 쇼’에 불과하다”며 “불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두려울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아직 살아 있으며 2018년 대선에 출마할 준비도 돼 있다”고 말했다. 룰라 지지자들은 사법당국과 언론, 야권을 비난했지만 여론은 시큰둥하다. 브라질 헌정 사상 가장 성공한 대통령을 묻는 조사에서 룰라 전 대통령은 한때 71%까지 치솟았으나 최근 37%로 떨어졌다.
페트로브라스 주가는 6일(현지시간) 주당 7.22달러로 17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부패와 정경유착으로 경쟁력을 잃어가는 데다 유가 하락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박종서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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