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권 50~60대 자산가 위주였던 빌딩 투자, 수도권 30~40대로 확산
#1 마포 28억 빌딩 산 40대 이모씨
은행서 금리 연 3.2%에 24억 대출
이자 등 제외 월 790만원 순수입
#2 송파구 빌딩 공동매입한 두 친구
5억2500만원 실투자, 48억원 대출
초역세권 입지…은행 문턱 낮아져
[ 문혜정 기자 ] 40대 자영업자 이모씨는 지난해 보유 현금 3억7150만원을 들여 28억3000만원짜리 8층 빌딩(서울 마포구)을 샀다. 음식점 편의점 사무실 임차인의 보증금 2억원이 있었고 은행에서 24억원(금리 연 3.2%)을 빌렸다. 금융권에서 빌딩 가격의 최대 80%까지 빌릴 수 있는 규정을 활용한 것이다. 건물가격의 4.6%인 취득세와 중개수수료 등은 보유 자금으로 냈다. 30억원에 가까운 건물주가 된 것이다. 이 건물에서 나오는 월 임대료는 1450만원. 이 중 은행 이자 640만원을 뺀 790만원이 월 순수입이다. 건물가격 대비 수익률(이자 포함)은 연 6.15%, 대출이자를 빼면 연 3.35%다.
3~4년 전만 해도 빌딩 투자는 고액 자산가들의 영역이었다. 수십억원의 현금을 가져야 빌딩 재테크를 할 수 있다는 인식이 일반화돼 있었다. 그러나 최근 빌딩투자시장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른바 ‘꼬마빌딩’으로 불리는 50억원 미만 소형 빌딩 시장에 이씨처럼 3억원 내외의 자기 자금으로 뛰어드는 ‘빌딩 개미투자자’가 늘고 있다. 적게는 2억~3억원, 많게는 5억~10억원의 자기 자금으로 빌딩 매입에 나선다. 이씨는 “아파트 매매로 큰 이익을 보기는 어려워지고 있고 상가는 환금성이 떨어져 저금리 시대에 고정 임대료가 나오는 소형 빌딩으로 눈을 돌렸다”고 말했다.
급증하는 소형 빌딩 거래…공동 투자도 등장
소형 빌딩 거래는 최근 2~3년 새 급증하는 추세다. 중소형 빌딩 매매 증가를 이끈 건 개미투자자라는 게 빌딩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서울지역 50억원 미만 꼬마빌딩 거래 비중은 전체 중소형 빌딩 거래의 77%에 달했다. 건당 평균 매매금액도 2012년 76억여원에서 지난해 40억여원으로 떨어졌다. 매도자 우위 시장으로 바뀌면서 빌딩가격도 강세를 지속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가족이나 친구들과 돈을 모아 빌딩을 구입하는 공동 투자자도 생겨나고 있다. 친구 사이인 50대 홍모씨와 김모씨는 지난해 서울 송파구에 있는 6층짜리 상업용 빌딩을 59억원에 공동 매입했다. 은행대출 48억원(금리 연 3.3%)과 세입자 보증금 8억7000만원을 뺀 두 사람의 실 투자금은 5억2500만원(취득세 포함)이다. 각자 2억6000만원가량 냈다. 두 사람은 월 임대료 2100만원 중 대출이자(1320만원)를 뺀 780만원을 받아 매월 390만원씩 나누고 있다. 소득세 등 각종 세금과 비용은 나눠 부담한다.
수도권 빌딩 매물 늘고 비(非)강남권 매수자 껑충
소액 투자자가 늘어나면서 건물 입지도 서울 강남권 이외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 강남 빌딩은 가격이 많이 오른 탓에 매수 희망자들이 다른 지역 역세권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12년 서울에서 거래된 중소형 빌딩 중 강남구 소재 물건 비중은 26%였지만 지난해엔 23.1%로 낮아졌다. 서초구 비중도 같은 기간 10%에서 8.9%로 떨어졌다. 마포구는 6%에서 9%, 성동구는 2%에서 3.9%, 관악구는 2.0%에서 2.7%로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30억원 미만 건물의 거래 비중도 2012년 42.5%에서 지난해 49.8%로 껑충 뛰었다.
빌딩 매수자 중 강남 이외 거주자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에 거주하는 비율이 최근 3년 새 39.4%에서 31.6%로 떨어졌다. 서울에 살지 않는 매수자는 같은 기간 8.1%에서 21.5%로 늘어났다. 오동협 원빌딩부동산중개 상무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건물 매수자 대부분이 강남권에 거주하는 50~60대 이상 자산가들이었는데 최근 수도권 등에 사는 30~40대 투자자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저금리와 아파트 재테크 퇴조가 배경
빌딩 개미투자자가 늘어나는 건 저금리의 영향이 크다는 분석이다. 2014년 8월부터 아파트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이 높아지면서 수익형 부동산인 빌딩에 대한 대출 한도도 함께 높아졌다. 건물 위치와 공실 여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건물가격의 70%, 투자자 신용도에 따라 최대 80%까지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 또 빌딩 매수자가 임대사업자 등록을 통해 대출 이자를 비용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재건축 아파트 등 주택 투자가 크게 위축된 것도 빌딩 투자가 늘어난 배경이다. 국내외 경기상황이 불투명해지면서 고정 임대수익을 내는 빌딩 선호 현상이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얘기다. 박원갑 국민은행 수석부동산팀장은 “서울 아파트값이나 전세보증금이 수억원에 달해 이 돈으로 맨 위층에서 거주하면서 아래층에는 기업이나 카페, 음식점이 입점한 건물을 찾는 수요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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