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독 자동차 부활 이끈 자발적 노동개혁
[ 강현우 기자 ] 크라이슬러는 미국 자동차 ‘빅3’ 중 하나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2009년 도산했다. 이후 이탈리아의 피아트에 합병돼 피아트크라이슬러(FCA)로 이름을 바꿨다. 연 300만대에 달하던 미국 내 생산 능력은 120만대로 뚝 떨어졌다.
이랬던 FCA가 확 달라졌다. FCA는 지난달 27일 9억달러(약 1조957억원)를 미국 생산시설 확충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투자가 마무리되면 미국 내 생산 능력은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연 300만대를 회복한다.
비결은 뭘까. 세르조 마르키온네 FCA 회장은 “노동조합의 협조 덕분”이라고 말했다. FCA 노조가 소속된 전미자동차노조(UAW)는 기업 해고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에서 유일하게 ‘철밥통’을 유지하던 강성 노조였다. 아무리 위기가 닥쳐도 기득권을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앞두고 자동차 경기가 급속히 위축됐다. GM과 포드는 공장 문을 닫고 직원을 줄이기 시작했다. UAW는 2008년부터 신입 직원들의 임금을 절반 수준으로 깎는 이중임금제 도입에 동의했다. 2009년에는 6년간 파업 자제에 합의했다. 2011년에는 기본급 자동 인상 제도도 폐지했다.
세계 1, 2위를 달리는 일본 도요타자동차와 독일 폭스바겐의 노조도 마찬가지였다. 폭스바겐은 1990년대 초반 적정 고용 수준을 3만명가량 초과하는 10만3000여명의 근로자와 오펠 등 독일 내 다른 공장보다 20% 높은 임금 등으로 경영난을 겪고 있었다. 1993년 19억마르크(약 1조3000억원)의 대규모 적자를 낸 뒤 노사는 근무형태를 주4일제로 바꾸고 임금을 16% 줄이는 데 합의했다.
1999년에는 인력파견회사 ‘아우토비지온’을 설립했다. 5000명 직원 전원이 기간제 근로자로 정규직보다 임금이 20%가량 낮은 아우토비지온은 폭스바겐 인력 운영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도요타는 1950년대 경영난과 대규모 노동쟁의 등으로 직원의 10%인 1500명이 해고되는 위기를 겪었다. 이후 노조는 노사 대립이 모두에게 피해만 입히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1962년 무파업 선언 후 현재까지 무파업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