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열려라! 우리말 - 오랑캐가 전해준 ‘호주머니’
“뷔페식당은 특성상 ‘한복 소매’에 음식이 묻어 위생 문제가 제기되는 등 한복과 관련된 고객불만 사례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고객 편의를 위해 안내한다는 것이 미숙한 대응으로 엉뚱한 오해를 받은 것 같다.”
몇 해 전 국내 한 유명호텔 뷔페식당에서 손님이 한복을 입었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한 일이 벌어져 논란을 빚었다. 호텔 측에서 당사자에게 서둘러 사과하면서 파문은 가라앉았지만 이를 계기로 한복에 대한 갑론을박이 무성했다.
한복에서 소매는 양복 소매에 비해 훨씬 넓으면서도 아름다운 곡선을 지녀 눈에 특히 잘 띄는 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한복 소매는 실용적인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하던 곳이다. 주머니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본래 우리 전통 한복에는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소지품을 넣는 주머니가 없었다. 대신에 간단한 소지품들을 윗저고리 소매에다 넣었다. 이곳을 넓게 만들어 손을 감추기도 하고 물건을 넣어 간수하기도 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한복에서 주머니 역할을 대신한 이 소매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다.
우리말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요즘은 권위주의적 표현이라 해서 잘 쓰지 않지만 언론에서 간혹 여야 정당 대표 간의 회담을 ‘영수회담’이라 할 때가 있다. 이때 ‘영수(領袖)’가 옷깃과 소매를 가리키는 말이다. 전통의상에서 옷깃과 소매가 가장 두드러지고 중요했는데, 그로부터 ‘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란 뜻이 생겼다. 어떤 일에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둔다는 ‘수수방관’에도 ‘소매 수’자가 쓰였다. ‘수수(袖手)’란 손을 소매에 넣은 것이니, 수수방관이라 하면 곧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이다.
요즘 생활한복에는 그 자체에 주머니가 붙어 있는데 이것이 ‘호주머니’이다. ‘호주머니’는 우리말 속살 하나를 보여준다. 이때의 ‘호’는 오랑캐 호(胡)다. 옛날에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진족을 일컬었다. 원래 우리 한복에 없던 것인데 북방 민족의 풍습이 들어와 바지 허리춤 부근에 덧대어 만들기 시작한 것이 ‘호(胡)주머니’인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문물 교류가 많았기 때문에 이 ‘오랑캐 호’자는 자연스레 우리말에도 여러 파생어를 낳았다. ‘호두, 호떡, 호콩, 호밀, 호접’ 같은 게 그런 것인데, 이때의 ‘호-’는 물론 ‘중국에서 들여온’이란 뜻을 더하는 접두사다. 호두는 원래 오랑캐 호(胡), 복숭아 도(桃)를 써서 ‘호도’라 읽고 적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발음이 바뀌어 ‘호두’가 표준어가 됐다. 요즘은 다들 ‘땅콩’으로 알고 있지만 이 말의 또 다른 이름은 ‘호콩’이다. 중국에서 들여왔다고 해서 예전엔 ‘호콩’이라고도 불렸으며, 다른 말로 낙화생(落花生)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낙화생이나 호콩은 잘 안 쓰고 순화어인 땅콩이 언중 사이에 뿌리를 굳게 내려 성공적인 우리말 순화 사례라 이를 만하다. ‘호떡’이나 ‘호밀’ ‘호접(호랑나비)’의 ‘호’ 역시 이들의 유래가 우리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하지만 ‘호빵’은 순수하게 우리가 만든 말이다. 이는 국내 제빵업체인 삼립식품에서 1971년 출시한 상품명이다. ‘호호 불면서 먹는 빵’이라는 의미에서 ‘호빵’이라 이름 붙은 이 상품은 45년 동안 인기를 누리면서 애초 고유명사였던 게 지금은 일반명사처럼 인식될 정도로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아직 단어로 오르지 않았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사심사부장 hymt4@hankyung.com
배시원 쌤의 신나는 영어여행 -반역(?)으로 더 멋진 영화의 오역들
생각보다 영화에서 많은 오역들을 만날 수 있는데, 다음의 오역(?)들은 어쩌면 원래 의미보다 훨씬 더 멋지게 다가오기 때문에, 영어와 영화를 좋아하는 많은 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을의 전설] (Legends of the Fall)=브래드 피트라는 배우가 얼마나 멋진지를 세계에 알려준 이 영화는 원래 [타락의 전설]의 오역이라고 주장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킨 이 제목은 그 자체로도 멋진 표현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랑과 영혼] (Ghost)=데미 무어와 패트릭 스웨이지, 그리고 우피 골드버그를 스타로 만들어준 영화, ‘Unchanged Melody’와 도자기 빚는 장면이 귀와 눈을 사로잡은, 이 애절한 사랑 영화에 <유령>이란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 (Dead Poets Society)=“Oh, Captain, My Captain”이라는 명대사와 키팅 선생님의 역할을 너무나 멋지게 소화한 로빈 윌리엄스의 열연이 빛나는 이 영화를 [과거 시인 연구학회]라고 변역했다면 지금의 감동이 있을까요?
[티파니에서 아침을] (Breakfast at Tiffany’s)=‘Moon River’를 기타 치며 부르던 오드리 헵번의 사랑스러운 매력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 이 영화 제목을 [티파니 보석상 앞에서 아침 식사]라고 했다면 너무 슬플 것 같아요. ㅠ.ㅠ
[내일을 향해 쏴라] (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Rain drops keep falling on my head’의 명곡과 폴 뉴먼 그리고 로버트 레드퍼드의 명콤비가 만든 희대의 명작입니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름이 바로 영화 제목과 같은데, 일본 번역가가 멋지게 번안한 것을 한국에서 현재의 제목으로 그대로 쓰고 있다고 하네요. 로버트 레드퍼드는 자신이 만든 독립 영화제 이름을 ‘Sundance Kid’에서 따왔지만, [부치 캐서디와 선댄스 키드]보다는 [내일을 향해 쏴라]가 훨씬 더 가슴 설레는 제목인 것 같습니다.
[카사블랑카](CASABLANCA)=‘당신의 눈동자에 건배’(Here’s looking at you, kid)라는 멋진 대사가 나옵니다. 원래 의미대로 ‘지켜보고 있다’라든지 그냥 ‘건배’라고 하지 않고 이렇게 멋진 표현으로 만드신 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어쩌면 오역을 넘어 최고의 번역이라 생각합니다~^^*
흔히 ‘번역’을 ‘반역’이라고 하는데, 이런 멋진 반역(?)들은 조금 너그럽게 용서해줘도 좋지 않을까요?
■ 배시원 선생님
배시원 선생님은 호주 맥쿼리대 통번역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배시원 영어교실 원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등 대학과 김영 편입학원, YBM, ANC 승무원학원 에서 토익·토플을 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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