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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마을] 문학이란 요리 더 맛있게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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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책읽는수요일/ 388쪽/ 1만6000원



[ 김보영 기자 ] 조너선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 속 걸리버는 아첨꾼으로 묘사된다. 그는 여행하며 만난 낯선 종족들에게 도가 지나칠 정도로 호감을 표시한다. 소인국 ‘릴리퍼트’에서 받은 직함에 열광하는가 하면, 말처럼 생긴 ‘후이넘’ 종족과 만난 뒤에는 말 흉내를 내며 뛰어다닌다. 걸리버의 지나쳐 보이는 아첨에는 영국계 아일랜드인인 저자의 정서가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있다. 그는 이방인으로서 영국인보다 더 영국적으로 행동할 때 소속감을 느꼈고, 이런 감정이 걸리버의 행동으로 표현됐다는 시각이다.

문학 비평은 문학 애호가들에게 환영받기 쉽지 않은 분야다. 행간을 읽는 작업인 비평적 분석이 문학 작품의 재미를 앗아간다는 선입견 때문이다. 하지만 ‘내용’과 ‘형식’이 분리된 요소가 아니라는 점을 감안하면 비평에 싸늘한 시선을 보낼 일만은 아니다. 그릇의 모양을 파악해야 내용물의 생김새를 알 수 있다. 문학 텍스트의 언어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수록 읽기의 즐거움이 풍성해진다는 결론이 얻어지는 이유다.

저명한 문학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 영국 랭커스터대 영문과 교수의 책이 문학 비평의 첫발을 떼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2013년 출간돼 이번에 국내 번역된 《문학을 읽는다는 것은》은 이글턴 교수가 《문학이론입문》 이후 30년 만에 낸 문학이론서다. 문학 전공자를 독자층으로 상정한 《문학이론입문》과 달리 일반 독자를 위해 쓰인 것이 특징이다. 전문용어를 아예 배제하거나, 쓰더라도 자세한 설명을 곁들였다. 문학 비평에 문외한이라도 쉽게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다양한 시대·장르의 작가와 작품을 끌어들여 문학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에 대해 설명한다. 내용만 ‘순진하게’ 읽어 내려가서는 파악할 수 없는, 숨겨진 소설적 장치를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물에 대한 성격 묘사가 대표적이다.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 주인공 페니 프라이스는 유순하고 수동적인 나머지 활기가 없어 보이는 캐릭터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은 스스로를 지킬 수 없는 젊은 여성이 방어적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다. 성격 묘사 자체를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읽을 수 있다.

서사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야기를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에서 소비에트연방 초기의 사회주의적 민주주의 붕괴를 그리면서 동물을 등장시킨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동물에게는 발굽만 있어 농장을 실제로 경영하기 어렵다. 이 사실은 독자들에게 무의식적 영향을 끼친다. 처음부터 편향된 구조로 시작한 이야기가 목적을 입증하는 데 효과적인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문학의 가치 漬〈?어려운 작업이다. 훌륭한 문학이 늘 심오하지는 않다. 희극이 비극만큼 깊은 뜻을 담고 있지 않다는 인식도 경계해야 할 편견이다. 다수의 비평가가 ‘일관성’을 훌륭한 예술을 평가하는 잣대로 내세우지만, 일관성은 있으나 진부한 작품도 많다. 저자는 “독창적인 표현과 정제된 상상력이 차별성을 이끄는 요소”라고 존 업다이크의 소설 등을 인용해 넌지시 귀띔한다.

평소 영미 문학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라면 이 책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주방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셰익스피어부터 제임스 조이스와 J K 롤링까지 다양한 작가의 작품이 비평 이론을 설명하기 위한 ‘싱싱한 재료’로 등장해서다. 이 모든 것이 비평의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서다. 이글턴이 책 첫머리에 적었듯이 “분석은 즐거움의 적이라는 신화를 무너뜨리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는 의지가 책장마다 스며들어 있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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