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가 있는 도서관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 박상익 기자 ] 고종 황제는 1908년 황실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해 서적 10만여권의 목록을 정리한 뒤 대제실도서관(大帝室圖書館)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한일강제병합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1911년 창경궁에 왕실도서관을 설립한 일제는 4년 뒤 낙선재에 4층짜리 건물을 세워 이전했고 1918년 ‘장서각(藏書閣)’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이후 70년 넘게 창덕궁과 창경궁, 덕수궁 등으로 옮겨 다녔던 장서각이 경기 성남 운중동의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옛 한국정신문화연구원)에 자리 잡은 건 1981년이다.
1978년 문을 연 한중연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장서각에 있는 방대한 분량의 자료를 연구해 한국학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다. 장서각은 한중연 소속의 한국학 전문도서관으로 분류된다. 장서각은 2008년부터 일반에 공개해 성남 시민을 비롯한 일반인과 학생들이 자주 찾고 있다.
장서각은 크게 두 종류의 자료를 보관하고 있다. 조선왕조의궤, 승정원일기, 동의보감 등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문헌을 비롯해 역대 왕의 문집, 저술류, 한글소설 등 왕실 문헌 9만여점이 한 축이다. 민간에서 수집한 문헌 4만여점도 장서각의 주요 자료다. 장서각 연구원들은 1990년대부터 전국의 사대부 집안을 찾아다니며 후손들이 소장한 자료를 수집해왔다. 후손들이 선뜻 기탁한 자료는 학자들을 위한 다양한 연구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장서각은 소장 자료를 활용한 대중 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2011년 장서각 건물을 신축하고 ‘조선의 국왕과 선비’라는 이름으로 상설전을 연 것을 필두로 매년 특별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조선시대 과거시험 답안지를 전시한 ‘시권(試券), 국가경영의 지혜를 듣다’에는 1만명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다. 매주 화요일에는 미리 신청한 단체이용자(10명 이상)를 대상으로 ‘장서각 고문헌 관리 시스템’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단체 관람이 많으며 “뉴스에서나 보던 고문헌 보존 처리 과정을 눈앞에서 볼 수 있어 신기하다”는 반응을 얻고 있다.
조선시대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장서각 아카데미 강좌도 1년에 세 차례씩 연다. ‘왕실 문화’ ‘왕실 문학’ ‘양반 문화’ ‘선비 정신’ 등을 대주제로 삼아 주제당 10~12회의 강연을 한다. 강좌마다 정원 280명이 모두 채워질 만큼 인기가 높다는 게 장서각 관계자의 설명이다.
43만여권의 자료를 소장한 학술정보관도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정보관 지하에 있는 한국학 일반도서자료실에는 한국학 자료 27만권이 있다. 성남시 도서관 상호대차 시스템에 포함돼 성남 시민은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서 학술정보관 소장 자료를 빌려볼 수 있다. 지난해 이현재 전 국무총리가 자신의 장서 7000여권을 한중 Э?기증해 1층 로비에는 1947년판 《자본론》, 《인삼사》 등 희귀 자료가 전시돼 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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