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사무실 생기고…친목 즐기고…절세까지
50세 이상 법인설립 34% 급증
임대 등 1억5천만원 버는 퇴직자, 법인설립 후 세금 절반 이상 아껴
"탈세나 불법은 아니지만 비용 유용 적발 땐 세금폭탄"
[ 윤희은 기자 ] 대기업에서 30년 가까이 근무하다 2010년 퇴직한 김모씨(63)는 지난해 경영컨설팅 업체 간판을 내걸고 법인을 설립했다. 서울 마포에 있는 본인 소유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꾸린 뒤 ‘기업경영 컨설팅업’이라는 업종 등록도 마쳤다. 그가 사무실에 가장 먼저 들여놓은 것은 사무용 책상이나 소파가 아니라 당구대와 커다란 냉장고였다.
김씨는 컨설팅회사의 대표지만 컨설팅 업무는 한 달에 몇 건 정도다. 그의 사무실에 드나드는 사람은 대부분 고향친구와 퇴직한 직장동료들이다. 그들은 1주일에 두세 번 김씨 사무실에 모여 냉장고 안에 넣어둔 맥주를 마시며 당구를 친다.
김씨가 100여만원의 법인 설립비를 들여 법인을 낸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은퇴했음에도 ‘대표’ 명함을 갖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는 점과 법인을 통해 누리는 적잖은 절세효과가 법인을 설립한 이유”라고 말했다.
채권 투자와 부동산 임대 등을 통해 연 1억5000여만원의 수익을 올리는 김씨는 수익 전부를 법인 소득으로 돌린 뒤 자신은 법인에서 연 5000만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 이에 따라 35%의 세율이 적용되는 종합소득세 대신 수익의 10%인 법인세를 내면 된다. 한해 910만원 정도인 건강보험료도 303만원으로 줄었다. 법인 설립 전에 비해 세금이 절반 이상 줄었다.
김씨처럼 사업이 아니라 다른 목적으로 법인을 설립하는 은퇴자들이 늘고 있다. 아침에 출근할 곳이 있다는 심리적 만족감에 절세까지 챙길 수 있어서다. 이른바 ‘노는 오피스족(族)’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50세 이상 법인설립자 수는 2010년 1만7456명에서 지난해 3만2577명으로 늘었다. 전체 법인설립자에서 50대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0년 28.94%에서 지난해 34.74%로 증가했다.
이 중에는 ‘노는 오피스족’도 적지 않다는 게 금융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법인에서 받은 월급을 용돈으로 쓴다. 대부분의 수익이 법인에 쌓이는 만큼 이렇게 모은 돈이 일정 규모 이상 불어나면 추가 투자도 법인 이름으로 집행한다.
일부에서는 설립한 법인을 다른 회사에 매각해 추가로 수익을 챙기기도 한다. 7년 전 설립한 법인을 지난해 여름 1000만원에 매각한 이모씨(58)가 대표적이다. 그는 법인을 운영하며 가족 및 지인과 함께 쓴 외식비와 교통비, 쇼핑비 등 1억원가량을 법인 비용으로 처리했다. 해당 법인은 수익을 거의 내지 않아 이 같은 비용은 고스란히 손실로 잡혔다. 지난해 2억2000만원의 순익을 올린 A회사는 절세를 위해 이씨의 법인을 사들였다. 4400만원(2억원 초과 법인은 법인세율 20% 적용)을 내야했던 A사는 해당 법인 인수로 순수익이 1억2000만원으로 대폭 줄면서 세금 부담(2억원 미만은 법인세율 10%)도 1200만원으로 감소했다.
새 부동산을 취득하려는 이들도 관심이 많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현행 지방세법에 따르면 설립 5년 내의 법인이 서울에서 부동산을 취득하면 5년이 지난 법인의 경우에 비해 등록세가 3배가량 중과된다”며 “이 때문에 5년 넘은 부실법인을 인수한 뒤 부동산 취득세를 줄이는 방법이 애용된다”고 말했다.
개인 소득을 법인으로 돌리는 것 자체는 현행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한 법무법인 소속 세무사는 “절세를 노린 꼼수로 보일 수 있겠지만 탈세나 불법은 아니다”며 “안전한 방법이라는 소문이 나 은퇴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법인 운영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는 있다. 구상수 법무법인 지평 회계사는 “세무조사 과정에서 개인비용을 법인비용으로 처리한 것이 적발되거나 법인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거래가격이 잘못 책정됐다는 것이 밝혀지면 뒤늦게 세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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