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좌동욱 증권부 기자 leftking@hankyung.com
선진국 연기금 경영진들
국민연금 CEO·CIO 동시교체
"국민들 가만 있냐"며 놀라
공기업 체질 못벗은 한국
혁신 없인 생존 못할 것
[ 좌동욱 기자 ] “선진국 연기금들은 장기투자를 위해 경영진을 내부에서 발탁합니다. 과거 100년간 연기금 조직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축적한 노하우입니다.”
한국경제신문이 세계 주요 국가의 대표 연기금과 국부펀드들의 움직임을 취재한 현장에서 빠짐없이 들었던 이야기다. 최고경영자(CEO)와 최고투자책임자(CIO) 중 한 명은 가급적 내부 출신을 선임한다는 원칙도 있었다. 먼 미래를 내다보고 장기투자를 하는 데다 개별 연기금마다 복잡한 부채(연금 지급액) 구조가 있는 만큼 내부 규정과 조직을 잘 아는 경영진이 투자를 실행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들에게 최근 한국 대표 연기금인 국민연금공단의 CEO와 CIO, 국부펀드인 한국투자공사(KIC)의 CEO가 동시 다발적으로 바뀐다는 소식은 제법 큰 흥밋거리였다. 특히 국민연금의 CEO와 CIO가 기금 운용 전략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는 소식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국부펀드 棘?세계적 석학인 애시비 멍크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CEO와 CIO 동시 교체가 불러올 경영 공백에 대해 연금 수급자인 국민들은 왜 가만히 있느냐”고 반문했다.
520조원을 운용하는 네덜란드 공무원연금운용(APG) 관계자는 “경영진이 자주 바뀌는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는 정부가 더 큰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어 “작년 말 물러난 딕 슬루이머 전 APG 회장은 APG(2008년 이전 ABP) 조직에서만 25년을 근무했다”고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올해 초 후임자로 선임된 안젤린 켐나 회장은 APG의 최고재무책임자(CFO), 최고리스크책임자(CRO), CIO로 6년을 일하면서 운용 능력을 검증받았다.
해외 연기금들은 장기적인 보수·성과 평가체계를 구축하고 민간의 우수 운용 인력을 끌어오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었다. 글로벌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안전 자산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서다. 전 세계 연기금 중 가장 많은 보수를 주는 캐나다연금위원회(CPPIB)도 5년 이상 장기 성과와 팀 단위 성과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보수가 10분의 1 수준에도 못 미치는 국민연금이 사실상 연 단위로 임직원들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는 것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기자는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연재를 마무리한 ‘글로벌 투자전쟁… 격전의 현장을 가다’ 시리즈를 내보내는 과정에서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받았다. 그중에서도 CIO는 내부에서 선발해야 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현재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연기금들은 대부분 공모를 통해 외부 전문가를 CIO로 선임하고 있다. CEO가 낙하산으로 선임되는 한국 현실에서 CIO의 내부 발탁이 장기투자 기조를 이어갈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회에서 법을 바꾸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도 필요 없다.
한국을 벗어나 보니 앞서가는 해외 연기금, 국부펀드들도 글로벌 투자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 혁신을 끊임없이 추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공기업 체질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연기금, 국부펀드들이 지금이라도 지배구조를 혁신하지 않으면 세계적 투자 경쟁에서 낙오하고 말 것이라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좌동욱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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