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정책자금에 해외자본도 몰려
우량 벤처기업 놓고 '투자 경쟁' 치열
[ 오동혁 기자 ]
올해 국내 벤처투자 규모가 15년 만에 ‘2조원 벽’을 돌파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역대 최고 호황’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창조경제를 앞세운 정부가 대규모 정책자금을 푼 상황에서 한국 벤처기업에 매력을 느낀 해외자본까지 물밀듯 몰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래가 유망한 스타트업이나 벤처기업을 선점하기 위한 투자사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인기 있는 벤처기업에는 ‘투자 룸(room)’이 없어 투자하고 싶어도 할 수 없을 정도다.
◆국내외 자금 일제히 몰려
30일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11월 말까지 국내에선 총 1조8271억원 규모의 벤처투자가 이뤄진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1조4109억원) 대비 29.5% 증가한 수치다. 11월 한 달 동안 1186억원 늘었다. 이달 들어서도 1000억~1500억원의 투자가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경우 올해 총 벤처투자 규모는 1조9000억원 후반대에 형성될 전망이다. 투자를 받은 벤처기업 수는 전년(901개)보다 100개가량 늘어난 1000개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협회 자료에는 해외 벤처캐피털이 본계정 또는 해외펀드를 통해 투자한 금액은 포함되지 않는다. 따라서 해외 벤처캐피털의 투자분까지 합산하면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2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연간 벤처투자가 2조원을 넘어선 것은 2000년(2조211억원) 이후 15년 만이다.
올 들어 한국 벤처에 투자하려는 해외 벤처캐피털(펀드)들의 움직임이 유난히 분주했다. 국내 특수효과업체인 덱스터가 지난 4월부터 7월 사이에 세계 최대 부동산 기업인 완다그룹, 중국 레노버 계열 벤처캐피털인 레전드캐피털, 중국 5위권 벤처캐피털인 DT캐피털 등으로부터 총 2100만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게 대표적이다. DT캐피털은 최근 화장품 판매업체인 비투링크에도 투자했다. 호텔예약 시스템 업체인 데일리호텔은 미국 세쿼이아캐피털로부터 100억원대의 투자금을 받았다.
◆우량 벤처 놓고 ‘돈의 전쟁’
한국에 투자거점을 세우거나 한국 벤처투자를 위한 펀드를 조성하는 곳도 늘고 있다. 중국 베이징치디그룹은 스마일게이트와 손잡고 1160억원의 펀드를 조성키로 했고, 요즈마그룹은 중국 국영투자기관인 ISPC그룹과 4400억원의 한·중펀드를 만들 예정이다. DT캐피털은 360억원 규모 펀드를 내년 중 결성키로 했다. 이 밖에 영국 핀테크 육성기관인 엔틱, 중국 창업지원센터인 트라이벨루 등도 한국 진출 계획을 밝혔다. 김형수 벤처캐피탈협회 전무는 “한국 벤처기업이 기술 및 콘텐츠 제작 능력은 뛰어난 데 비해 (미국 유럽 등지의 벤처기업보다) 상대적으로 기업가치가 낮다는 것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며 “해외 벤처펀드들이 앞으로 사물인터넷(IoT), 의료기기 등의 분야로도 진출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국내 최대 온라인커뮤니티 ‘중고나라’를 운영하는 큐딜리온은 최근 투자유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목표치보다 자금이 더 몰리는 ‘오버부킹(초과 투자)’이 발생했다. 국내외 벤처캐피털·증권사 등 10여곳이 앞다퉈 투자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결국 피투자업체인 큐딜리온이 직접 투자사를 고르는 상황이 발생했다.
돈이 넘쳐나면서 우량 벤처기업을 두고 펼쳐지는 벤처캐피털 간 ‘투자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올해 결성된 국내외 벤처펀드들이 본격적으로 투자에 나서게 되는 내년에는 이 같은 ‘우량 벤처 품귀현상’까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김창규 KTB네트워크 상무는 “중국 투자사들은 한국 벤처기업들의 기업가치를 높게 평가하고 투자금도 많이 투입하는 경향이 있다”며 “내년에는 실탄을 두둑이 마련한 국내 벤처캐피털과 대규모 자금을 싸들고 온 해외 투자사 간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동혁 기자 otto8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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