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세계 흥행돌풍 속 한국·베트남·터키서 고전"
국내선 '히말라야' 못 이기고
베트남선 한국과 합작영화 '내가 니 할매다'에 밀려
SM엔터테인먼트에 협업 제안…엑소 뮤직비디오 앞세워 중국 공략
[ 고재연 기자 ] 10년 만에 나온 ‘스타워즈’ 시리즈의 신작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가 각국 박스오피스 1위를 점령하며 신기록을 갈아치우는 가운데 유독 아시아 국가에서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고 있다. 제작사인 월트디즈니는 27일(현지시간) ‘깨어난 포스’가 개봉 12일 만에 북미에서 5억4500만달러(약 6380억원), 그 외 지역에서 5억4600만달러(약 6390억원)의 관람료 매출을 올려 역대 최단기간 10억달러 돌파 기록을 세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 베트남, 터키에서는 자국 영화에 1위 자리를 내주며 ‘굴욕’을 겪었다. 미국 주간지 할리우드리포터는 “세계 영화관을 ‘스타워즈’가 지배하는 가운데 한류가 스타워즈 ‘포스’에 저항하고 있다”며 “한국과 베트남이 스타워즈 저항군의 거점이며 그 근간에는 아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한류 열풍’이 있다”고 분석했다.
◆‘스타워즈’ 한국 베트남서 흥행 저조
28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영화 ‘히말라야’는 지난 25~27일에만 관객 176만명을 모아 누적 관객 수 422만명을 기록했다. 반면 ‘깨어난 포스’는 지난 주말 93만명이 관람해 누적 관객이 250만명에 그쳤다. 28일 기준 예매율은 ‘히말라야’ ‘조선마술사’ 등에 이어 3위로 밀려났다.
베트남에서는 심은경이 주연한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양국 합작영화 ‘내가 니 할매다’가 지난 11일 개봉 이후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깨어난 포스’를 멀찍이 따돌렸다. 김성은 CJ E&M 해외영업팀장은 “2014년 한·베트남 최초 합작 영화인 ‘마이가 결정할게2’가 흥행 1위에 오른 뒤 베트남에서 한국 영화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며 “‘내가 니 할매다’는 리메이크 과정에서 베트남전쟁의 역사와 가족의 소중함 등 베트남 전통과 가치를 반영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내년 1월9일 개봉을 앞둔 중국에선 스타워즈 전작 세 편이 올린 수익이 1870만달러(약 219억원)에 불과하다.
◆서구적 문화코드의 한계
스타워즈 시리즈가 유독 아시아에서 흥행하지 못한 것은 ‘스타워즈 향수’를 공유하는 팬층이 두텁지 않아서다. 전문가들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데다 영웅신화와 선악 대립 등 ‘서구적 문화코드’가 현실적 이야기를 좋아하는 아시아 관객의 취향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대중문화 평론가 심영섭 씨는 “똑같은 SF영화라고 하더라도 ‘인터스텔라’와 같이 생각할 지점을 주는 영화와 달리 ‘미국의 건국 신화’라고 불리는 스타워즈 시리즈에는 한국인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전 줄거리를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시리즈 영화의 특성도 흥행을 가로막는 요소다. 심씨는 “미국에서는 스타워즈 코스튬, 피규어 등이 큰 인기를 끌며 세대를 뛰어넘는 하나의 문화가 됐지만, 아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평가했다. 온 가족이 즐기는 영화가 아니라 소수 마니아들이 즐기는 영화라는 의미다.
◆아시아 ‘스타워즈 키즈’ 기르자
월트디즈니는 아시아의 젊은 층을 ‘스타워즈 키즈’로 기르기 위해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후속작의 흥행을 위해 아시아에 ‘스타워즈 문화’를 심겠다는 전략이다. 집중하는 곳은 중국 시장이다. ‘깨어난 포스’가 역대 흥행 1위작 ‘아바타’를 제치려면 세계 2위 영화시장으로 급성장한 중국에서의 흥행이 관건이다. 지난 10월부터 디즈니는 중국 포털사이트 텐센트에 스타워즈 에피소드 1~6편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달 초에는 중국 만리장성 쥐융관(居庸關) 계단에 은하제국군 ‘스톰트루퍼’ 모형 500개를 전시하는 이색 이벤트를 열었다. 한류스타인 아이돌그룹 엑소(EXO)의 중국인 멤버였던 루한을 홍보대사로 임명했다.
스타워즈 문화에 익숙지 않은 아시아 10~20대 젊은 층을 잡기 위해 SM엔터테인먼트 측에 ‘협업’도 제안했다. 디즈니는 지난달 엑소와 스타워즈 협업으로 영화에 등장하는 광선검을 모티브로 한 신곡 ‘라이트세이버(Lightsaber)’를 발표해 유튜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라이트세이버’를 기획한 이성수 SM 프로듀싱본부장은 “아시아의 젊은 관객을 흡수하려는 디즈니와 외연을 확장하려는 SM의 전략이 맞아떨어진 결과”라며 “스타워즈 세대가 아닌 엑소의 어린 팬들이 뮤직비디오를 본 뒤 ‘제다이가 누구냐’며 스타워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할리우드리포터는 “엑소가 아시아에서 스타워즈의 ‘포스’를 깨우고 있다”며 “K팝의 명성에 힘입어 스타워즈가 아시아 시장에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누릴 것”이라고 평가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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