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IMF 亞·太국장, 유일호 경제부총리 후보자 만나 조언
[ 조진형 기자 ] 이창용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이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를 만나 “한국 경제의 구조적 역동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국장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부총리 후보자 임시사무실에서 유 후보자를 만나 “외국인 투자자들 사이에선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연 3%대에서 서서히 하락해 일본의 장기침체를 닮아가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많다”며 “10~20년 후엔 0%대 성장에 그칠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년 초 출범할 예정인 ‘유일호 경제팀’은 갈수록 떨어지는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구조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 국장은 관할 지역인 아·태 지역 주요 국가 순방 일정 중 하나로 지난주 서울을 방문했다.
이 국장은 유 후보자와의 면담에서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급속한 고령화 등 구조적 요인에 따라 잠재성장률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신용등급도 상향 조정돼 당장 금융위기나 경제위기를 맞을 가능성은 적지만, 구조적으로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위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을 안전하지만, 재미없는 투자처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방한 때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만성적 저성장을 피하려면 단기적 재정·통화정책으로 대응하기보다 중장기적으로 ‘헬조선(지옥처럼 혹독한 한국 사회)’으로 축약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산, 보육, 교육, 서비스업 육성 등 근본적인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빠르게 구조개혁을 추진하려면 서로 이해관계와 의견이 다르더라도 양보를 통해 타협하는 것이 중요한데, 한국도 정치적으로 서로 다른 이해관계 때문에 1990년대 일본처럼 개혁시기를 놓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국장은 ‘G2(주요 2개국) 리스크’로 인해 부채가 많은 신흥국 상당수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세계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신흥국 부채를 꼽았다. 미국 금리인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달러 부채가 많고, 원자재 수출 비중이 높은 신흥국이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도 전체 기업부채 규모가 크지 않지만, 상장기업의 20%가량은 벌어들인 수익으로 이자도 못 갚아 금리 상승 시 구조조정 압력을 받으면 문제로 불거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중국은 국유기업을 중심으로 기업부채가 너무 많은데도 비효율 岵?투자가 이어져 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가계부채에 대해선 “경제에 부담이 되는 수준으로 증가세가 계속되면 문제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이 국장은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G20(주요 20개국) 기획단장,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이코노미스트 등을 거쳐 지난해 2월 한국인으로선 IMF 내 최고위직인 아·태 담당국장에 임명됐다. 아·태 국장은 IMF에서 총재와 부총재에 이은 서열 3위로 1997년 말 한국의 외환위기 때는 혹독한 구조조정을 주도했다.
조진형 기자 u2@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