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위의 인문학
사이먼 가필드 지음 / 김명남 옮김 / 다산초당 / 576쪽 / 2만8000원
[ 고재연 기자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1881년 발표한 소설 《보물섬》은 머나먼 섬에 묻힌 막대한 보물과 해적의 궤짝에 관한 이야기다. 궤짝에는 두 가지 물건이 들어 있었다. 항해일지와 봉인된 종이 한 장이다. 종이에는 어떤 섬의 지도가 그 위도와 경도, 수심, 언덕, 만과 후미의 이름, 그 밖에 배를 안전하게 해변에 정박하는 데 필요한 모든 사항과 함께 그려져 있었다. 보물섬에는 세 개의 붉은 가위표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중 하나에는 ‘이곳에 보물이 잔뜩’이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짐 호킨스와 친구들은 보물을 찾아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지도에는 인간의 상상력이 담겨 있다. 지금처럼 완벽한 위성 지도를 만들어내기 이전, 당대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가볼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 자신들의 욕망과 두려움을 투영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잘못 그려진 지도를 들고 서쪽 바다로 나아가기 전까지 바깥세상은 무서운 괴물들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상상력이 풍부한 이들은 지구 곳곳을 보물이 숨겨져 있는 환상의 공간으로 표현했다. 지도의 역사는 곧 인류의 역사였 ?
작가 사이먼 가필드는 《지도 위의 인문학》에서 지도 역사상 흥미진진하고 의미심장한 순간을 골라 생생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며 인류 문명의 발전사를 유쾌하게 조망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그린 지도부터 ‘허풍쟁이’ 마르코 폴로의 지도까지, 지도와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중세 유럽은 문화예술뿐 아니라 지도에도 끔찍한 암흑기였다. 세상은 아담과 이브가 사는 에덴동산에서 시작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발끝에서 끝났다. 1290년 무렵 그려진 헤리퍼드의 ‘마파문디(중세에 그려진 세계지도를 통상적으로 일컫는 말)’는 당대 사람들의 두려움과 집착이 표현된 지도였다. 중앙에는 예루살렘이 있고, 양 끝에는 천국과 연옥이 있으며, 머나먼 지방에는 전설 속 생물과 괴물이 버글거렸다. 기독교인의 삶을 가르치는 지도로서 지상의 지리에 천상의 이데올로기를 투영한 것이다.
이 지도를 팔아넘기려 한 ‘간 큰’ 신부도 있었다. 1988년 영국 헤리퍼드 대성당 주임사제인 피터 헤인스와 소더비경매장 의장인 가우리 경은 성당보수를 위해 이 마파문디를 경매에 부치기로 했다. 소더비는 350만파운드의 최저 경매가를 보장하기로 했는데, 그렇게 된다면 세계에서 제일 비싼 지도가 되는 것이었다. 곧바로 대중의 불만이 터져나왔고, 영국문화재보존기금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를 경매에 부치겠다는 발상에 격분했다. 진통 끝에 영국에선 ‘마파문디 신탁기금’이 마련됐고, 영국인은 로마제국 말기까지 축적한 역 玲?신화, 철학이 담긴 지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인디아나 존스’의 지도, ‘해리포터’의 마법 지도 등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지도도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해왔다. 현존하는 디지털 지도의 여러 기술이 영화적 상상력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영화에서 한 발 앞서 등장한 기술이 과학자에게 영감을 줘 현실에서 구현됐다는 것이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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