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정부돈 먹기 백태
한 유명 엔젤투자사의 임원 김모씨(36)는 2012년부터 2년간 ‘대학생 창업 도우미’로 활동했다. “창업자금이 필요하면 정부지원금을 끌어다 쓸 수 있다”며 청년들에게 창업에 나설 것을 독려했다. 하지만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청년 창업을 돕는다며 정부 지원금과 기술신용보증기금의 대출 5억1000만원을 받아 자신의 주머니에 넣은 것으로 드러났다. 성공한 청년 벤처사업가로 자신을 알렸지만 실제로 수익을 낸 사업은 없었다. 그가 내세웠던 기업 및 명문대학 강의 경력도 가짜였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 재정·조세범죄 중점 수사팀(손영배 형사5부장)은 7일 이처럼 정부 보조금을 가로챈 엔젤투자자와 요양원 등을 지난 7월부터 조사해 75명을 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편취한 정부보조금은 178억9000여만원에 달했다.
북부지검에 따르면 정부 보조금을 가로채는 방법은 다양했다. 강모씨(35)는 창업기획사를 차리고 미래창조과학부 지원금을 따낼 목적으로 ‘소프트웨어 전문창업기획사 운영 기획서’를 만들었다. 기획서가 미래부 심사를 통과하면서 강씨는 2013년 12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정부 보조금 5억2000여만원을 따냈다. 하지만 검찰이 지난달 강씨를 기소하며 확인해보니 강씨의 업체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엔지니어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수사 과정에서 미래부 담당자를 접촉했는데 기업의 능력을 평가할 정도로 해당 업계를 알지 못했다”고 전했다.
LED(발광다이오드) 생산업체 대표 이모(45)씨 등 5명은 조달청을 속여 116억2700만원의 부당이익을 올렸다. 조달청에는 자신들이 생산한 높은 품질의 LED를 공급하기로 계약하고 실제로는 품질이 떨어지는 LED를 다른 업체에서 공급 받아 공공기관에 납품했다.
실제로는 지출하지 않은 돈을 썼다며 정부의 장기요양급여를 부정수급한 요양원도 있었다. 지난달 6일 검찰에 구속기소된 요양원 대표 원모씨(61)는 물리치료사를 고용하지 않고도 요양원에서 물리치료를 제공했다고 서류를 조작해 요양급여 3억6000여만원을 타냈다. 이처럼 요양원 직원들의 근무 내역을 조작하거나 직원을 허위로 등록해 보조금을 타낸 요양원 운영자는 5명으로 편취한 금액은 25억5000만원이었다.
북부지검 관계자는 “일정 서류만 갖추면 지급되는 등 국가 보조금이 허술하게 운영되면서 보조금을 가로채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공공기관이 정기적으로 실사를 나서는 등 정부 시스템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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