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토종 IB 아벤두스캐피털 이끄는 아시시 빈데
스타트업 20곳에 11억달러 자금 조달
직원 19명의 인도 토종 IB…골드만·크레디트스위스 실적 제쳐
인도 IT업계 주무르는 거물
전기전자 전공…IT '보는 눈' 길러…몸값 200만달러 IB업계 '연봉킹'
[ 이상은 기자 ]
1995년 인도 콜카타의 인도경영대학원(IIM)을 졸업한 스물네 살 아시시 빈데는 막연히 자신이 금융업에 종사할 거라고 생각했다. 비를라기술과학대에서 전기전자공학 학사를 마치고 경영대학원에 들어가긴 했는데 졸업장을 받을 때까지 전공을 어떻게 살릴 수 있을지,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저 금융회사에 들어가면 복잡한 엑셀 시트와 씨름하면서 야근을 일삼아야 하겠지, 생각하는 정도였다.
몇 군데 일자리를 두드려 봤다. 그가 찾은 일자리는 당초 생각했던 금융회사가 아니라 치약으로 유명한 ‘콜게이트 파몰리브’의 지역담당자를 보조하는 일이었다. 2년간 일한 뒤 적성에 별로 맞지 않아 그만뒀다. 오디오를 만들고 수출하는 피어리스 오디오란 회사에 들어갔다가 3년 만에 사표를 썼다. 그는 이때까지만 해도 평 徨?인도의 젊은이였다.
인도 IT업계의 ‘자금줄’
그 후로 15년이 지난 지금, 빈데는 인도 정보기술(IT)업계를 주무르는 거물이다. 지난 3년간 인도의 IT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에 흘러들어간 자금은 100억달러를 넘는다. 이 자금을 가장 많이 끌어댄 투자은행(IB)은 골드만삭스도, 크레디트스위스도 아니다. 생소한 인도 토종 IB인 아벤두스캐피털(Avendus Capital Pvt.)이다. 2011년 이후 이 은행은 인터넷 관련 회사 20곳이 11억달러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도왔다. 빈데가 이끄는 은행이다. 뭄바이에 본사가 있다.
빈데의 직함은 전무이사고, 디지털 미디어와 테크놀로지 분야의 증자,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을 담당한다. 최고경영자(CEO)는 따로 있지만 총 19명의 직원을 이끄는 실질적인 리더는 빈데다.
아벤두스캐피털의 실적은 화려하다. 볼리우드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사븐이 타이거글로벌매니지먼트에서 1억달러를, 차량공유 서비스 택시포슈어가 소프트뱅크그룹에서 2억달러를 조달하도록 했다. 이외에도 북마이쇼, 숍클루스, 프리차지, 퀴커, 플립카트, 레드버스 등의 자금조달을 이끌어냈다. 한국에서는 익숙지 않지만, 인도 젊은이들에겐 잘 알려진 서비스들이다. 적어도 인도 IT 시장에선 아벤두스캐피털이 글로벌 IB보다 자금조달 능력이 뛰어나다. 톰슨로이터 집계에서 올 상반기 아벤두스캐피털의 딜 자문 실적은 전체 2위다. 모건스탠리 바로 아래다. IT 분야의 자문 실적만 집계하면 압도적인 1위다. 인도 언론들은 그를 ‘인도 IT업계의 레인메이커’라고 부르고 있다. ‘돈의 비’를 부르는 사람이란 뜻에서다.
인도 언론 이코노믹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그의 연봉은 200만달러(약 23억원)로, 인도 IB 종사자 중 가장 높았다. 미국계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는 지난달 이 회사 지분 72%를 1억8500만달러(약 2150억원)에 사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빈데와 그의 팀이 계속 IB 업무를 하는 조건이다.
닷컴 거품의 ‘쓴맛’ 경험
그를 지금의 모습으로 바꾼 것은 2000년 닷컴 거품이었다. 미국과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를 휩쓸었던 닷컴의 광풍은 인도에서도 마찬가지로 거셌다.
피어리스 오디오를 그만둔 뒤 그는 자기 오디오 회사를 세우기로 마음먹었다. 2000년 오디오보텍스라는 회사를 차렸다. 오디오를 만드는 게 아니고 기업 대 기업(B2B) 형태로 고급 오디오 기기를 거래하는 온라인 장터였다. 그는 인도 언론 라이브민트와 한 인터뷰에서 “오디오 광이라서 회사를 세웠다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회사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2000년 3월10일, 나스닥지수는 5046.86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 거품이 꺼졌다. 사업모델이 분명치 않은 IT 회사들이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오디오보텍스는 이듬해까지 견뎠지만 결국 문을 닫았다. 그는 이 무렵의 경험이 “IT 업계 전반뿐 아니라 회사의 가치평가나 자금조달의 문제를 이해하도록 도왔다”고 회고했다.
빈데는 이후 미국계 사모펀드 뷰그룹의 인도지사에서 5년여 근무하며 IB 전문가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아벤두스캐피털에 2006년 합류했다.
“닷컴거품 때와 다르다”
아벤두스캐피털이 처음부터 지금처럼 잘나갔던 것은 아니다. 2009년 회계부정으로 문을 닫은 사트얌 컴퓨터서비스의 매각을 골드만삭스와 공동으로 주관하며 명성을 얻었다.
이어 2011년 빈데가 작성한 ‘디지털로 가는 인도’라는 168페이지짜리 보고서가 히트를 치면서 이 분야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 보고서에서 그는 2011년 8억1900만달러 수준인 인도 전자상거래 소매시장 규모가 2015년에는 117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전망은 올해 실제 수치(110억달러)와 거의 일치한다.
그래도 빈데의 표현은 겸손하다. 그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일찍 인도 IT 기업들을 발견했고, 우리들이 IT 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는 데 일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인도 IT 시장이 과열돼 있으며 스타트업들의 가치가 과대 평가돼 거품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빈데는 이코노믹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1998~2000년 사이엔 인터넷 회사들의 가치를 평가할 때 지속적으로 이익을 낼 가능성을 별로 고려하지 않았고 하룻밤 사이에 시가총액이 10분의 1로 쪼그라드는 일이 흔했다”며 “지금 우리가 그런 상황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아벤두스캐피털은 그가 창업한 회사가 아니다. 실질적인 리더가 된 지금, 자기 이름으로 회사를 따로 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했다. 라이브민트와의 인터뷰에서 빈데는 “창업 같은 것을 생각할 시간이 없기도 하고, 아벤두스가 인도 IT업체에 자금을 조달하는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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