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집권은 지연된 민주화, 양김시대 국민의 분열도 심화
87체제 부작용도 많아
대중 민주주의 극복이 남겨진 과제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김영삼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민주화라고 생각했다. 김대중도 덜하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1979년 부마사태와 80년 광주항쟁이 불러온 결과에 대한 추종자들의 평가는 극을 달렸다. 양김은 국민을 분열시켰다. 그것은 한국 정치의 지체 현상을 불렀다. 이후 12년을 허비하고서야 김영삼은 천신만고 끝에 집권했다. 역사는 마치 한국인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것처럼 천천히 나아갔다.
그 지체의 결과가 ‘386 세대’의 형성이었다. ‘전두환 키즈’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 세대는 지금 전교조 안에, 민노총안에, 그리고 언론사와 사회조직의 중추부를 장악하고 있다. 시간은 386을 사회의 중심으로 밀어올렸다. 대부분 정치인들이 386투쟁가이거나, 기회주의자, 아니라면 투쟁가들이 감옥 갈 때 고시원에 있었다는 부채의식을 가진 자들로 채워져 있다. 그것이 사회를 짓누르는 불안의 징후요, 마음 한구석에서 한국 민주주의를 응시하는 자책의 숨은 원인이다. ‘전두환 시대’라는 독특한 시간의 지체가 있었고 국민들은 민주주의가 기어이 실패하고 말 것이라는 조바심을 냈다. 그 조바심이 내재화하면서 종북과 극좌의 사상적 지진아들을 만들었다.
고(故) 김영삼 대통령에 대한 기억은 ‘저돌적 민주화’다. 그의 행동과 선택, 승리와 좌절의 순간들마다 국민들도 환호와 지지, 분노와 장탄식을 보탰다. 그는 기어이 대통령이 됐고, 하나회를 해체했고, 두 명의 전임 대통령을 재판정에 세웠고, 독재를 심판하는 청문회를 열었고, 공직자 재산 공개와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정치가들 중에 자신의 생각을 김영삼만큼 거침없이 표현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그는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쳤고 “젊은 클린턴에게 내가 정치를 좀 가르쳤노라”고 큰소리쳤다.
그의 평생의 경쟁자였던 김대중은 대통령으로서도 불운했다. 그는 노회한 김종필과 권력을 분점하는 은밀한 약속을 하고서야 겨우 권력을 잡았다. 외환위기는 김대중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었지만 동시에 대통령의 손발을 묶어 국제통화기금(IMF)의 협조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우울한 정치는 김대중 개인의 성격 탓도 클 것이다. ‘거침없는 김영삼’은 옛 시대로의 회귀, 다시 말해 군부 쿠데타의 가능성을 뿌리째 뽑았다. 그러나 거침없는 민주화의 부작용도 피어올랐다. 그렇게 절제의 민주화 아닌 방종의 민주화가 판도라의 뚜껑을 열어젖힌 것이다.
87체제는 김영삼 집권기에 대부분 제도화됐다. 96년 노동법 개정은 YS의 말마따나 김대중의 비협조로 실패했다. 그러나 노동의 권력화, 노동권력의 정치화는 김영삼 시대에 이뤄졌다. 세계 최강의 전투력을 자랑하는 민노총은 95년에 태어났다. 87체제의 그 질풍노도는 김영삼 체제하에서 차례로 제도화의 수순을 밟았다. 교단을 좌익화한다는 전교조도 세를 불려 갔다. 그렇게 악의 꽃이 피어났다.
경제가 곧 정치였지만 그는 경제를 몰랐다. 비주택분야 노동분배율은 80년대 말 일시적으로 80%까지 치솟았다. 이런 높은 분배율은 비교할 전례도 없는 수준이었다. 임금은 87년부터 극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88년엔 바로 생산성을 넘어섰고, 98년에 급격히 원점 회귀할 때까지 김영삼 정권 내내 생산성으로부터 유리되어갔다. 그는 많은 사람을 정치로 끌어들였지만 정작 누구의 어떤 머리를 빌려야 하는지는 잘 몰랐던 것 같다.
기업들은 새 정부가 그다지 친기업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챘다. 제조회사들이 대거 중국으로 이전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특징이었다. 한국 제조업 노동자 비율은 92년 25%의 정점을 찍고 기조적으로 하강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 외환위기였다. 반복적인 경제적 고통은 무분별한 열정에 사로잡힌 좌익의 발호를 낳고 있다.
이제 그도 역사의 별이 됐다. 그는 타고난 낙관론자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사회는 깊은 우울증적 불안에 빠져들고 있다. 언젠가 막 대통령이 된 김영삼에게 이명박이 물었다고 한다. “왜 그때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그토록 반대하셨나요?”라고. 김영삼 대통령다운 답이 돌아왔다. “거참, 씰떼없는 질문을….” 그렇게 한 시대가 막을 내렸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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