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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前 대통령 장례식장에서 만난 'YS맨'들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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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지연 지식사회부 수습기자) “김영삼 전 대통령은 철저한 의회주의자, 투철한 민주주의자였습니다. 한국이 이제까지 수차례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낼 수 있었던 것도 YS가 문민화의 기반을 닦았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한 22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와 만난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전 수석은 김영삼 정부의 ‘실세’, ‘부통령’으로 불린 인물입니다. 누가 김 전 대통령에 대해 안 좋은 말이라도 하면 곧잘 핏대를 세우곤 해서 ‘혈죽(血竹) 선생’이라는 별명도 있었지요. “소중한 분을 잃어 슬프고 답답한 마음”이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 전 수석은 목이 메어 한 마디 한 마디를 뱉는 것조차 힘겨워했습니다.

‘정치인 YS’를 기억하는 이들은 민주화의 거목, 큰 별을 잃었다고 애도했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유명한 말처럼, 김 전 대통령은 유신체제와 전두환 정권에 맞서 목숨을 걸고 투쟁했습니다.

Y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김재철 회장은 “수차례 고비와 위기를 경험하면서도 불의와 싸우며 민주화 투쟁을 하는 모습을 보며 김 전 대통령의 정직과 참신에 매료됐다”고 회고했습니다. 오정소 전 보훈처장 역시 “그의 정치적 여정 자체가 인간적인 매력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은 1983년 5월 전두환 정권에 맞서 23일간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가택연금이 풀린 뒤엔 김대중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를 만들고 신민당 창당의 주춧돌 역할을 했습니다. 1985년 민주한국당 의원들이 전부 빠져나와 신민당으로 몰려가자 당시 언론에서는 “월남 후 보트피플 같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이 전 수석이 “총재님 너무 독한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둘 가지고는 직선제 못한다”며 밀어 붙였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김 전 대통령의 판단은 맞았습니다. 그는 마침내 대통령 직선제를 일궈냈습니다.

고인의 빈소 앞에서 만난 많은 조문객들이 민주주의를 향한 김 전 대통령의 결단력과 카리스마를 추억했습니다. 민주화 투쟁을 할 당시 그가 보인 뚝심에 정치인으로서의 매력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새벽에 김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아침에 바로 장례식장으로 달려나왔다는 한 시민은 “부모를 잃은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며 “최고의 지도자로서의 카리스마를 보여준 인물을 잃어 섭섭하다”고 추모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립니다. 하지만 조문객들의 회고를 들으며 김 전 대통령이 원칙과 소신을 갖고 담대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며 특유의 매력을 풍긴 정치인이라는 점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원칙 없는 포퓰리즘적 구호가 난무하는 요즘의 정치권을 생각하니, 고인의 민주화 이념이 제대로 계승·발전되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끝) /sj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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