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외주화
[ 고재연 기자 ]
지난 12일 오후 7시께 서울 도화동 ‘마포원조떡볶이’ 앞 골목길을 따라 200m가량 긴 줄이 섰다. 지난달 방영된 SBS 예능 프로그램 ‘백종원의 3대천왕’ 떡볶이 편에서 ‘서울 3대 떡볶이’로 이곳이 소개된 이후 매일 저녁 시간대 벌어지는 풍경이다. 한 시간째 기다리고 있다는 김모씨는 “요식업계 최고 전문가인 백종원 씨가 꼽은 ‘맛집’이 궁금해 일찍 퇴근해서 왔다”고 말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 영화평론가 이동진 등 대중 인지도가 높은 전문가들의 ‘추천 파워’가 커지고 있다. 미디어 및 인터넷을 통해 소개하는 맛집과 영화 등이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다. 각 분야 전문가가 특정 상품을 분석해 올리는 블로그가 소비에 미치는 영향력도 상당하다.
대중문화평론가 김헌식 씨는 “정보과잉 시대에 콘텐츠 전문가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도 ‘결정장애’의 한 단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목표치는 굉장히 높아졌지만 개인에겐 그걸 충족시킬 만한 역량이 없으니 전문가나 대리인을 찾아 부탁한다”며 “여기에서 수동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현대인의 성향이 드러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각 분야 전문가에게 자신의 선택을 맡기는 이른바 ‘선택의 외주화’다.
취향보다 순위에 의존하는 현상은 소비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생의 진로를 결정하는 취업 선택에서도 나타난다. 각종 취업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는 ‘1순위 그룹 A기업, 2순위 그룹 B기업, 3순위 그룹 C기업…’ 식으로 등수가 매겨진 취업 배치표가 대표적이다. 취업 게시판에는 ‘금융 공기업과 현대자동차 중 어디가 더 좋은가요?’ 등 전혀 다른 사업군의 회사를 두고 우열을 가리는 질문이 쏟아진다. 한 취업 준비생은 “적성보다 취업 배치표상의 서열이 회사를 선택하는 주요 기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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