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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데스크] '강제 빅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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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완 산업부 차장 twkim@hankyung.com


한국 기업들은 인수합병(M&A)에 소극적이었다. 우리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권이지만 M&A시장 규모는 오랫동안 세계 30위권 밖이었다. 기업들의 M&A를 비교해봐도 확연하다. 구글이 2010년부터 지난 9월 말까지 154개 기업을 사들이는 동안 삼성전자의 M&A는 37건에 그쳤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기업문화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 여론 △전문인력과 금융시스템 부재 등을 이유로 든다. “오너 체제가 강한 한국 기업들은 실패에 대한 부담 때문에 M&A에 소극적”(월스트리트저널)이라는 지적도 있다. 실패 사례도 많다. 적정 가치보다 비싼 가격에 샀다가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하고 되팔거나, 아예 문을 닫은 경험이 적지 않다. 그래서 “M&A는 한국식 경영에 맞지 않다”는 자조적 인식도 한때 확산됐다.

재계 화두로 떠오른 M&A

그런 점에서 M&A가 재계의 최대 화두로 등장한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올해 국내 M&A시장은 양과 질에서 과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먼저 규모가 커졌다. 파이낸셜타임스 보도를 보면 올 들어 지난 10월까지 한국의 M&A 건수는 885건, 규모는 843억달러에 달했다. 지난해에 비해 건수?27% 증가했고, 규모는 작년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

M&A의 주역들이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롯데 등 대기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국내 주력 사업의 재편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M&A의 효과는 많다. 기업들은 잘하는 분야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국가 경제 차원에서는 과잉투자의 비효율을 해소할 수 있다. 앞으로 국내 M&A시장은 더욱 활성화할 전망이다. 기업들이 점점 M&A를 성장의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다 보유 현금(지난해 말 기준 매출액 1000대 기업 64조8000억원)도 비교적 많다. 대우조선해양 우리은행 대우증권 동부팜한농 쌍용시멘트 코웨이 등 대형 매물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앞으로 1~2년이 기업에는 사업 재편의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움직임이다. 벌써 기업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화학 해운 조선 등 부실 징후가 보이거나 과잉투자된 업종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 합병설의 진원지도 정부였다.

정부주도 구조조정은 안돼

이런 모습은 외환위기 직후 1998년의 ‘빅딜’을 연상케 한다. 당시 정부는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5대 그룹이 석유화학 발전설비 반도체 등 7개 업종에서 인수합병, 사업 양수도 등 구조조정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빅딜은 사실상 정부가 강제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기업들이 반발하자 정부는 “기업 간 빅딜이 적극적으로 이뤄지지 않으면 여신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압박했다. 결국 LG반도체가 현대로 넘어갔고 한국중공업 등 발전설비는 두산이 인수했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자동차는 해외 매각 수순을 밟았다. 그러나 어느 기업에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기업의 의사와 관계없이 정치 논리로 추진했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적인 지적이다.

이번에야말로 정부는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M&A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정부가 제 아무리 사업 재편을 하려고 해도 기업의 수요에 맞지 않으면 원하는 효과를 볼 수 없다. 반대로 기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말려도 하는 게 M&A다. 그게 시장이다.

김태완 산업부 차장 tw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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