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수지 기자 ] 1840년 시작된 아편전쟁에서 영국은 중국에 굴욕을 안겼다. 차(茶) 수입 때문에 늘어난 무역적자를 아편 밀수출로 만회하려던 영국과 이를 막으려는 중국 간 전쟁에서 영국은 근대화된 무기로 중국을 눌렀다. 중국이 서구 국가와 벌인 첫 전쟁이었다. 이 결과 중국은 영국과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을 맺고 홍콩을 영국에 넘겨줬다. 아편전쟁은 중국인에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깨지고 서구에 주도권을 내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중국은 100년 동안 사회적 불안과 외세의 침략, 전쟁의 고통을 겪었다”고 언급했을 정도다.
이로부터 175년. 영국과 중국 정상은 양국 관계의 ‘황금시대’를 선언했다. 영국은 지난 19일부터 나흘간 자국을 방문한 시 주석 맞이에 심혈을 기울였다. 찰스 왕세자가 20일 아침 시 주석의 숙소인 로열만다린호텔까지 찾아와 함께 차를 마셨고, 오전에 열린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공식 환영식에선 예포 41발이 발사됐다. 통상 발사하는 것보다 두 배가량 많다.
최근까지도 영국과 중국 사이는 껄끄러웠다. 2012년 중국 정부가 적대시하는 티베트 불교 최고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를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만나자 양국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기도 했다.
중국에 대한 영국의 태도가 달라진 건 올초부터다. 캐머런 정부는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서방 국가론 처음으로 참여했다. 동맹국인 미국 정부는 AIIB를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금융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보고 동맹국에 합류하지 말 것을 권했지만 중국에 대한 영국의 구애는 끊이지 않았다.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동중국해 군사활동과 위안화 평가절하, 사이버해킹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이 고조됐을 때도 영국은 중국을 의식해 언급을 피했다.
영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주요 2개국(G2)으로 떠오른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양국 정상은 지난 21일 정상회담에서 400억파운드(약 70조원)에 달하는 무역·투자 협정에 서명했다. 협력 분야도 에너지, 관광, 헬스케어, 부동산, 금융 등 약 150개에 이른다.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영국 방문 중 최대 경제 협력 규모다.
영국이 지나치게 중국으로 기우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지난 18일 “영국이 중국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아첨 외교’를 펼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 영국 고위 관리는 FT에 영국의 대중 외교와 관련해 “경제 이익에 몰두한 장사꾼 방식으로 무원칙하고, 단기 투자 유치를 노린 것”이라며 “앞으로 실제 효과를 낼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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