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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모리슨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 "입양은 기회…아이들 가정의 사랑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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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에서 입양홍보 운동가로…

6세때 보육원, 14세에 미국 입양
양부모에게서 받은 사랑·성공
입양아·입양부모들 도와야죠



[ 이미아 기자 ] “입양은 기회를 얻는 겁니다. 사랑과 보호를 받을 가정, 교육받을 권리, 정상적인 아동으로 성장할 가능성을 주는 미래가 달린 일이죠.”

한국계 입양아 출신의 미국 항공우주공학자이자 국내 공개입양 활성화 지원단체인 한국입양홍보회 설립자인 스티브 모리슨 씨(한국명 최석천·59·사진)는 최근 홀트아동복지회 60주년을 맞아 방한해 이같이 말했다.

모리슨 씨의 어린 시절은 파란만장했다. 그의 고향은 강원 묵호다. 생부는 알코올중독자로 걸핏하면 가족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생모는 남편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결국 그와 남동생을 두고 집을 나갔고, 생부는 그 후 집에 있는 날이 거의 없었다. 형제는 거리에 나앉았다. 동생이 먼저 시장 상인에게 입양됐다. 홀로 남아 또다시 거리를 헤맸다. 그러다가 무릎을 다쳐 다리를 절게 됐다.

여섯 살이던 1962년 당시 일산에 있던 홀트 보육원에 들어가면서 그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8년 동안 그곳에 머물다가 열네 살 때 미국의 존 모리슨·마거릿 모리슨 부부의 양자로 입양됐다. “부모님은 친자녀가 세 명 있고, 저를 포함해 입양 아동이 두 명 있었어요. 미국에 도착하고 집에 처음 들어섰을 때, 온 가족이 저를 따뜻하게 맞아줬어요. 그런 느낌은 태어나서 처음이었죠.”

그는 항공우주학계 명문인 미국 퍼듀대를 졸업한 뒤 36년째 인공위성 개발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양부모는 공부를 잘한 그를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모리슨 씨는 “퍼듀대 등록금이 다른 형제들의 대학 등록금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이 들었다”며 “아버지가 대출받아 등록금을 마련해 줬을 때 너무나도 뭉클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항상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잊지 않았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후 한국에서 “올림픽까지 치른 나라에서 아직까지도 ‘아동 수출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소식을 접했을 때부터 “때가 되면 한국에서 공개입양 운동을 꼭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를 위해 세운 단체가 1999년 설립된 한국입양홍보회다. 이 단체는 2000년부터 매년 전국 입양가족 대회를 열고 있다. “국내 입양 활성화를 위해선 입양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지속적으로 홍보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습니다. 입양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뿌리 깊으니까요. 다행히 요즘 들어서 공개입양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친딸 셋과 입양한 아들 둘을 둔 모리슨 씨는 “가정의 울타리가 절실히 필요한 소외 아동들에게 단순히 국경이나 민족주의 같은 ‘어른의 잣대’만 강요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또 “나 역시 입양으로 삶이 바뀐 만큼, 앞으로 그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다른 입양 아동과 입양 부모들을 돕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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