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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진심과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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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딩의 시대 열릴 때
고집스럽게 녹음 거부한
첼리비다케의 외로운 길
소신은 늦게라도 빛을 봐

문철상 < 신협중앙회장 mcs@cu.co.kr >



여기 두 명의 지휘자가 있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세르주 첼리비다케. 카라얀은 클래식에 문외한이라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이다. 하지만 첼리비다케는 아직도 소수의 클래식 애호가들만 아는 사람이다.

카라얀은 베를린필하모닉오케스트라, 첼리비다케는 뮌헨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각각 이끌면서 동시대 클래식 음악계를 평정한 명 지휘자들이었다. 그런데 후세에 이렇게 명암이 엇갈린 이유는 레코딩이라는 시대의 흐름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 차이 때문이라는 평가가 많다.

카라얀은 베를린필과 함께 레코딩 시대에 폭넓은 레퍼토리를 무기로 클래식 음악계의 헤게모니를 장악했다.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면 카라얀이 녹음한 음반을 거치지 않고는 어려울 정도로 거대한 음악의 제국을 구축했다.

반면 첼리비다케는 녹음을 매우 싫어했다. 첼리비다케가 남긴 음반은 가족들이 공연장에서 녹음해 둔 소수의 작품을 그가 타계한 뒤 내놓은 것들이다. 이마저도 적은 수만 발매를 허락해 유통되는 음반이 얼마 되지 않는다. 그가 지휘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전설처럼 전해져올 뿐이다.

필자는 “음악은 사람이 느끼는 감동과 현장에서의 공감이 중요하며 레코딩으로 음악을 편집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첼리비다케의 고집에 주목한다. 물론 첼리비다케의 그 소신은 소통이 중요시되는 현대엔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음악이라는 지고한 가치를 위해 돈과 명예가 보장된 레코딩의 길을 마다하고 고독한 가시밭길을 선택한 그의 원칙에 자꾸만 마음이 간다. 오늘날 세태는 편하고 빠른 길을 좇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며, 이익만 된다면 원칙과 진심 따윈 헌신짝처럼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시대를 역행했던 첼리비다케의 연주를 이제 많은 사람이 찾고, 그를 재조명하고 있다. 필자도 그가 지휘한 드보르자크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를 들어봤다. 다른 지휘자의 연주보다 다소 느리지만 더 따뜻하고 포근한 2악장 라르고를 잊을 수 없다. 아름다운 잉글리시 호른의 연주가 마치 그리운 어머니의 손길 같기도 하고, 고집불통의 첼리비다케가 음악을 듣고 있는 청중에게 자신의 진심과 원칙을 이야기하며 화해를 요청하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람의 진심과 원칙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사람이 알게 되는 법이다.

문철상 < 신협중앙회장 mcs@cu.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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