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는 선점, TPP에선 뒤처져
가입 득실보다 미가입 손실 따져야
두려워 말고 적극 협상 나설 때
조원동 < 前청와대 경제수석·중앙대 석좌교수 chow4241@hanmail.net >
이달 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 소식을 러시아에서 세미나 참석 중에 접했다. 러시아 참석자가 걱정스런 얼굴로 한국에 대한 영향을 물어왔다. 수출품이라고는 자국 땅에서 생산하는 석유, 가스 등이 주종인 러시아도 이럴진대, 원료를 수입해 가공한 뒤 다시 수출해야 하는 한국 입장은 어떨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TPP 가입에 대한 셈법은 복잡할 수밖에 없다. 과거 우리가 했던 세계무역기구(WTO)와의 시장개방 협상, 개별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과는 현격히 다르다. 종래의 ‘공산품=이익, 농산품=손해’라는 단선적인 도식은 이번에는 안 통한다. 공산품도 경우에 따라서는 생존을 위협받는 경쟁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TPP 마지막 협상에서 발목을 잡은 것도 쌀이 아닌 자동차였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가입국인 캐나다, 멕시코가 거세게 반발했지만, 일본은 동남아에서 만든 부품을 단 일본차를 역내산으로 인정받는 데 성공했다. 만약 한국이 TPP에 가입한다면, 동남아산 일본차가 한국 시장에도 진출하게 된다. 과거 한국이 한·일 FTA를 두려워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일본산 자동차 때문이었는데, 이제 일본 본토산보다 더 싼 동남아산 일제차가 관세도 없이 한국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TPP 가입셈법이 복잡한 두 번째 이유는 후발자로서 이미 선발자들 간에 합의된 규범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성 때문이다. 어떤 품목을 개방할지, 안 할지를 정하는 주고받기 시장개방 협상은 마지막에 결정되지만 원산지규정, 보조금, 분쟁해결절차 등 모든 참여국이 합의해야 하는 규범협상은 상대적으로 빨리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발자 입장에서 이미 합의된 규범이 신규 참여국 때문에 손상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규범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도 확실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했듯이, 과거 한·미 FTA 때 투자자국가소송(ISD)과 같은 복병이 또 튀어나올 수 있을는지 아직은 미지수다.
가입셈법이 복잡한 이유는 또 있다. TPP는 가입에 따른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가입하지 않았을 때의 손실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손실은 닥치지 않으면 가늠하기 어렵다. 마치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처럼, 잘못하다가는 국민들 앞에서 ‘쇼한다’는 소리를 듣기 딱 알맞다.
그러나 손실이 나면 얼마나 치명적일지 짐작해볼 만한 사례는 있다. 현 정부 들어 우리와 FTA를 체결한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는 협상이 지연된다고 거의 외교관계를 단절할 듯이 항의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이들 세 나라는 모두 TPP 초대 가입국이 됐다. 이들은 거대 시장을 屛?TPP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왜 이렇게 집요하게 한국과의 양자협상을 원했을까. 바로 한·미 FTA로 인해 미국에 내준 한국의 축산품 수입시장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FTA는 한국이 선점했지만, TPP에서는 한국이 후발자다. 선발자들이 TPP 시장에서 한국 수출품이 차지했던 몫을 빼앗아 갈 수 있다. 그 규모가 얼마일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이는 분명히 곧 닥칠 현실이다. 더구나 TPP 시장은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웃돌 정도로 거대시장이다.
TPP 가입은 당위다. TPP에 가입하려면 자동차 시장도 내줄 수 있다는 각오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나 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일본과의 공연문화개방 절대불가론이 지금까지 유지됐더라면, 과연 한류는 있었을까.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이미 세계는 글로벌 경제가 됐고,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면 생존조차 위협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원동 < 前청와대 경제수석·중앙대 석좌교수 chow4241@hanmail.n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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