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선 한국호, 다시 기업가 정신이다
아산 기업가 정신의 뿌리
김성훈 울산대 경영대학 교수
1997년 현대그룹은 창립 50주년을 맞아 ‘현대 50년사’를 발간했다. 1947년 현대건설을 창업하기 이전 상황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그룹의 성장 과정과 에피소드가 자세히 적혀 있다. 아산이 직접 기념사를 쓴 사사(社史)의 목차에 유독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이 있다. ‘고유모델 개발’ ‘자주 개발’ ‘기술 자립’ ‘역량 자립’ ‘국산화’ 등이다. 선진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기술개발 및 경영을 강조한 것들이다.
아산이 자립 경영을 고수한 이유가 뭘까. 무엇보다 아산은 신규 사업 진출을 결정할 때는 항상 국내 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을 겨냥했다. 자동차, 조선, 중장비, 전자 및 반도체 등은 규모의 경제 효과가 워낙 커서 작은 내수시장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글로벌 산업들이다. 이를 명확히 알았던 아산은 사업 초기에는 선진 기업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빠르게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을 폈다.
하지만 포드, 미쓰비시 등 선진 기업들은 현대를 제품수명주기상 선진국 시장에서 성숙기에 접어든 제품이나 기술을 한국 내수시장에 판매함으로써 추가 이윤을 얻는 데 활용하는 파트너 정도로 인식했다. 또 한편으론 현대가 세계시장에서 잠재적 경쟁자로 돌변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런 이해상충이 아산으로 하여금 이들과의 제휴를 포기하게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다음으로 1960~1970년대 우리나라와 현대그룹의 위상에 비춰볼 때 글로벌 다국적 기업과의 대등한 협상 자체가 어려운 측면이 있었다. 예를 들어 1971년 조선업 진출 시 기술 도입을 위해 처음 접촉한 독일의 아게베세조선소는 도면과 용역비로 580만달러, 판매수수료로 척당 선가의 5%를 요구했다. 그러면서도 브랜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당시 국내 기업 평균 매출이익률이 5%였던 점을 고려하면 이처럼 높은 수수료를 지급하면서 이윤을 내기가 어려웠다. 자동차 사업 진출 때 포드가 요구한 무리한 계약 조항들도 아산으로 하여금 독자노선을 추구하게 한 자극제가 됐다.
마지막으로 다국적 기업의 도움 없이도 독자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경험이 있었기에 자립 경영이 가능했다. 아산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1952년 UN군 묘지 단장, 1965년 태국 고속도로 공사,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 등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었다.
이렇듯 아산의 ‘하면 된다’는 신념은 홀로서기를 하는 데 핵심 자산이 됐다.
융합·협업과 네트워크 경영이 강조되는 요즘에도 핵심 기술과 역량 확보 없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하기 佇틈募?점에서 아산의 자립 경영이 주는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김성훈 < 울산대 경영대학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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