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뉴욕 특파원) 12일 오전 6시(미국 동부시간).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났다. 전화는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가 시작되는가 싶더니 10분 후에 전화벨이 울렸다. 스웨덴어가 뭍어나는 억양이었다. 전화기 건너편의 목소리는 먼저 “장난전화가 아니다”는 걸 여러번 강조했다. 그리고 나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고 용건을 전했다. 순간 “이거 진짜 장난전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6시30분. 노벨상 위원회의 공식인터뷰가 시작됐다. 수상자 선정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는 전화 인터뷰였다. “만약 여러분이 나이가 들고,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면 아마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는 걸 알게 될 겁니다.” 겸손한 어조로 시작했지만 곧 흥분했다. “오 마이 갓(oh my god), 이게 정말 사실인가.” 상대방에게 고맙다는 말을 150번은 넘게 한 것 같다.
오전 10시40분. 내가 속한 프린스턴대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한다고 연락이 왔다. 경영학부는 이날 수업을 취소한다고 공지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나를 축하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기자회견장에는 기자뿐만 아니라 동료교수와 교직원, 학생들도 모두 참석할 수 있다고 안내문이 떴다.
오후 1시반. 기자회견장인 알렉산더홀 리차드슨 강당으로 들어섰다. 무릎이 불편해 오른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내년에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 카메라 후레쉬가 터지고 3분간의 기립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내가 평생동안 일군 업적과 성과에 대한 경의의 표시라고 한다. 맨 앞줄에 앉은 내외신 기자들도 예외가 없었다.
크리스토퍼 아이스그루버 총장이 나를 소개했다. “디턴은 자신의 학문분야에서 뿐만 아니라 프린스턴대의 리더”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내가 쓴 ‘위대한 탈출’이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며 자신도 책이 다 팔리기 전에 몇 권 사야겠다고 말했다. 청중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실리아 로즈 정책대학원장이 마이크를 받았다. “당신은 이 학교를 정말 자랑스럽게 만들었다”며 감사하다고 전했다. 경제학과 교수인 자넷 쿠리에도 마이크를 잡았다. “디턴 교수의 학문에 대한 열정은 그를 지켜본 누구도 한 순간에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또 나와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얼마나 재밌고, 위트가 넘치며 놀라울 정도로 박식할 뿐 아니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극찬했다.
이제 내가 직접 수상소감을 말할 차례다. “제가 노벨상을 받은 것은 마치 번개를 맞는 것처럼 일어날 확률이 아주 희박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하루 종일 나에게 축하인사를 건냈지만, 나는 도대체 무엇을 축하하는 건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또 웃었다. 프린스턴대가 나에게 베푼 모든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연구실과 함께 일을 할 수 있는 동 巢浴沮? 7분간의 짧은 수상 소감이 끝나고 질문이 시작됐다.
첫 질문은 지속적이고 강력한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는 내용이었다. 오늘 아침에 내가 받았던 질문보다는 쉬었다. 그 때는 유럽난민위기를 어떻게 하면 풀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인류는 점점 풍족한 사회에 근접하고 있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도 그만큼 쌓여있다. 인류에게 최대 위협은 성장의 둔화다. 부유한 국가조차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십년간 성장률이 하락했다. 저성장은 모든 것을 오염시키고, 정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한 불평등도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두번째 질문은 남아메리카의 빈곤에 대한 내용이다. 사실 남미는 내 전공은 아니다. 하지만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두 경제대국이 불평등을 줄여나가면서 보다 평등하게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적극적인 부의 재분배 프로그램이 소득격차를 줄이고 있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빈곤 측정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어렵다. 최근 세계은행이 낸 라틴아메리카 보고서를 보면 한 가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은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게 없다.”
앞으로 계획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배우들이 아카데미상을 받으면 수명이 5년 연장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노벨상 수상자에게도 같은 일이 생기기를 기대한다. 다시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본업인 연구를 더욱 열정적으로 계속할 것이다. 다른 계획은 없다.
정부의 사회과학 기금의 축소, 경제개발과 헬스케어의 상관관계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부와 헬스케어간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정부 정책과 같은 고려해야 할 다른 요소들이 많이 있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남아프리카와 인도의 빈곤상황을 묻는 학생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나의 출신 배경이 연구주제를 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묻는 질문이 나왔다. 물론 그것이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제공한다. 나는 인생에서 운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했다. 가족들은 내가 어렸을 적 책을 잡는 대신 들에 가서 일을 거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공부를 계속하도록 용기를 복돋워줬다. 아버지는 결핵으로 2차세계대전 당시 군에 징집되지 않았다. 덕분에 나도 이렇게 지금 살아있는 것이다. 나는 가난했지만 운이 좋았다.
오후 2시반. 기자회견이 끝났다. 이제 리셉션장으로 가야 할 차례다. 학교에서 마련해준 전동카트를 타고 기자회견장을 떠났다. 2011년에 나보다 먼저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크리스토퍼 심스 교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보다 20년전인 1995년에 노벨생리의학상을 따낸 에릭 위샤우스 교수도 참석해줬다. 고마운 동료들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이다. 그런데 아침 6시반부터 지금까지 계속 떠들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내 심정을 안다는 듯이 어깨를 두드렸다. (끝)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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