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철 중소기업 부장 synergy@hankyung.com
“그게 뭐 제대로 되겠어요? 이맘때면 호들갑을 떨다 흐지부지된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정부에선 책임지려는 사람이 없고, 정치권은 ‘헛발질’만 해대니….”
정부가 내놓은 ‘정책금융 역할 방안’에 대한 경제학자들의 냉소 어린 반응이다. 총론은 거창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예전처럼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것이라는 전망에서다.
지난 8일 발표된 정부 안의 골자는 구조조정의 걸림돌로 지적받는 정책금융의 중복·쏠림 지원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레 ‘좀비기업’이 퇴출된다는 게 정부 주장이다. 하지만 ‘총대’를 메고 기업 구조조정을 주도할 인물도 보이지 않고, 시각도 근시안적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한폭탄’ 좀비기업
과도한 정책금융의 폐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제기돼 왔다. 15년이 흘렀지만 ‘단기대책’으로만 일관해 상황은 악화일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책금융 비중은 한국이 7.33%로 글로벌 강소기업 본산인 독일의 0.99%에 비해 일곱 배나 높다. 급기야 지난 1분기 기준, 비금융 상장사 중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은 34.9%로 치솟았다.
좀비기업이 ‘시한폭탄’으로 바뀐 것은 일차적으로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이다.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에 사로잡혀 근본적인 처방을 미루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내 임기만 아니면 괜찮다”는 무책임이 행정부에 만연한 건 당연지사. 그러다 보니 부처 간 역할을 조율하는 컨트롤타워가 없어 사후 평가도 유명무실하다. 한 번 시작된 지원(보증)이 웬만해서는 10년 이상 중단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치권은 긁어 부스럼을 초래하는 ‘역주행’을 일삼고 있다. 얼마 전 여야가 경쟁적으로 발의한 ‘사회적 경제 기본법’이 단적인 예다. 마을기업,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을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규정하고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한쪽(정부)에선 구조조정을 한답시고 ‘대책’을 내놓고, 한쪽(정치권)에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좀비기업을 육성하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해결책은 규제 개혁 병행뿐”
단편적인 기업 구조조정 대책만으론 역부족이다. 넓은 시야를 갖고 규제 개혁 등 여건부터 마련해야 한다. 대폭적인 규제 개혁으로 경제를 활성화해야 구조조정도 촉진되고 충격도 줄일 수 있다. 특정 업종의 진입 장벽을 없애면 새로운 기업이 들어오고, 경쟁이 치열해져 한계기업이 도태되는 것은 경제학의 기본이다.
규제 개혁 중 시급한 것을 꼽으라면 단연 노동시장 유연화다. 지나치게 경직화된 연공서열식 임금체계가 노동생산 봉?떨어뜨려 국가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 한국 근로자의 근속 연수별 임금격차(초임 대비 30년 이상 임금지수)는 세 배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1.5배)보다 월등히 높다. 수도권 규제 타파도 이참에 다시 공론화해야 한다. 각 산업분야에서 중국이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경제 중심지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발목 묶고 달리기’하라는 격이다.
더 늦기 전에 정부가 정권의 명운을 걸고 나서야 한다. 해결책은 가장 이른 시일 내에 기업 구조조정과 과감한 규제 개혁을 병행하는 것뿐이다. 수술을 미루면 당장은 편하지만 상처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는 법이다.
김태철 중소기업 부장 synergy@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슈퍼개미] [한경+ 구독신청]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