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오해와 진실 <32> 인플레가 악화시키는 부의 불평등
통화제도는 간섭주의의 일종…과도한 통화팽창, 경기변동 초래
인플레는 통화공급 증가의 결과
발행 화폐 일찍 받은 사람은 '이득'…늦게 받을수록 '손실' 커져
이 차이가 소득불평등 확대시켜
'평등' 위해 시장 간섭한다면 역설적으로 불평등 더 키워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소득불평등이 심화됐기 때문에 발생했고 소득불평등은 다시 자본주의 탓이라는 것이 시중에 떠도는 주장이다. 이런 불분명한 논리에 따라 미국에서는 금융위기 직후에 ‘월가를 점령하라’는 정치적 구호가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은행을 포함한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보수가 너무 많지 않은가 하는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리고 《21세기 자본》을 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를 포함한 일부 경제·경영학자는 소득세 최고 세율을 인상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미국에서 소득불평등이 2008년을 전후해 급격히 악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소득불평등이 그때보다 훨씬 더 나빴던 때도 경제가 위기에 빠진 적은 많지 않다. 그러므로 소득불평등을 포함한 불평등이 2008년 금융위기의 원인이라는 주장은 틀린 것이다.
북한과 옛 소련 등 공산주의 사회의 불평등이 자본주의 사회의 불평등보다 더 큰 게 사실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가 소득불평등을 악화한다는 주장도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자본주의가 완전히 평등한 사회를 이루지는 못하지만 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겠다고 피케티처럼 각종 정부 정책을 통해 시장 간섭을 한다면 역설적이게도 불평등은 더 악화될 공산이 크다.
어떤 국가도 간섭주의 또는 사회주의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상할 수 있는 불평등(왜냐하면 완전한 자본주의에서도 천부적인 재능, 외모 등으로 불평등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보다 현실에서의 불평등은 훨씬 악화될 수밖에 없다. 현실의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것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이다.
지폐의 생산과 유통이 국가 독점이라는 점에서 통화제도는 간섭주의의 일종이다. 지폐는 정치적 화폐(political money)로서 거의 언제나 과다 발행되고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만성화돼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2013년의 1달러는 1913년의 1센트 가치밖에 없다고 발표한 바 있다. 비교적 화폐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미국마저도 인플레이션이 작지 않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최근에는 베네수엘라가 연 200%가 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치닫자 국민은 국가가 발행한 지폐로 음식을 싸는 등 폐지로 취급하는 일마저 벌어지고 있다.
과다한 통화팽창은 1차적으로는 인플레이션, 경 ?변동 등을 일으킨다. 그리고 인플레이션은 다시 소득재분배에 의한 소득불평등(부(富)의 불평등 포함), 경제계산의 문제, 생산 위축, 제품의 질과 양 속이기 등을 초래해 지속적인 성장을 불가능하게 한다. 이때 정부가 경제위기를 해결하겠다고 구조조정에 개입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정부의 존립도 지속 불가능한 처지에 몰리게 된다.
인플레이션이 가져오는 소득재분배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다. 인플레이션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과 손해를 보는 사람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때 이득과 손실은 영합(零合·zero-sum)이다. 인플레이션의 소득재분배효과는 소득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인플레이션이 없을 때와 비교해 그렇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초래하는 소득재분배 과정을 살펴보자. 새로 발행된 화폐를 최초로 받은 사람은 자신들이 판매하는 재화 가격은 오르지만 구입하는 재화는 아직 오르지 않은 상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득을 본다. 그러나 새로운 화폐를 늦게 받은 사람은 자신들이 구입하는 재화 가격은 오르지만 판매하는 재화는 더 이상 오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손해를 본다.
설명의 편의상 두 집단으로 나눴지만, 현실에서는 무수한 집단이 새로운 화폐를 받는 시기가 늦어짐에 따라 이득의 크기가 조금씩 줄어들고 중간 지점 이후에는 손실의 크기가 조금씩 커진다. 그리고 이득은 눈에 잘 띄고 극적이지만 손실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크기는 이득의 크기와 같다.
새로운 화폐를 다른 사람보다 일찍 받는 사람이나 기관은 중앙은행, 정부, 금융부문, 증권거래소, 정부와 가까운 국영기업과 대기업, 아주 큰 부자들, 일부 보통 사람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화폐를 늦게 받는 사람은 많은 보통 사람, 연금 수령자, 봉급생활자 등이다. 머레이 라스바드는 전자를 ‘인플레이션 소비자’, 후자를 ‘인플레이션 지급자’라고 불렀다.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득불평등은 다른 문제도 일으킬 수 있다. 일부 기업가 또는 기업은 과다 축적한 부를 이용해 경쟁으로부터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노력한다. 경쟁을 억제하는 데 인플레이션이 그 수단을 제공하는 것이다. 물론 이 점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필자는 인플레이션의 정확한 정의는 통화 공급의 증가라고 했다(본지 9월5일자 A20면 참조). 그러므로 현재와 같이 지수로 파악한 물가가 상승하지 않는 경우에도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소득불평등은 진행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증가율은 컸지만 소득 하위계층, 특히 소득 최하위계층의 소득증가율은 소득 상위계층의 소득증가율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8년 금융위기가 달러 과다 발행으로 발생했고, 화폐의 과다 발행은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소득재분배가 일어나게 하며 이로 인해 소득불평등이 악화된다는 경제이론이 옳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소득불평등이 경제위기를 초래했다는 잘못된 주장을 하고 있고 이에 따라 정부는 각종 간섭주의적 정책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소득불평등의 악화는 경제위기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 피케티 聆揚?오류
부자에 대한 세금 올려 불평등 없애자는 주장은 잘못
세금 늘면 자원·일자리 줄어 소득불평등만 더 악화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대책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소득세의 적정 최고 세율을 80%로 인상하고,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가장 쉽게, 그리고 가장 흔히 제안되는 것이 부자에 대한 세금을 올리거나 신설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피케티도 예외는 아니다.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사회의 중요한 목표라고 우리 모두 합의했다고 먼저 가정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세금 인상과 신설이 불평등 해소를 위해 좋은 수단인가 하는 점이다.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두면 민간은 그만큼 가난해진다. 이 점은 세금을 누가 내느냐 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다. 일단 누군가가 세금을 더 많이 내면 전체 민간이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은 줄어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세금징수 비용과 세금회피 비용은 세금의 크기와 비례해 증가할 공산이 크다. 저소득자에 비해 고소득자가 이런 비용을 지급할 용의가 있을 뿐 아니라 실제로도 충분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민간이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은 더 줄어든다.
만약 세금이 증가한 만큼 민간이 처분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어 일자리가 감소한다면 소득 불평등은 악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일자리가 줄어드는 경우, 다른 일자리에 비해 기술이 없거나 미숙련 노동자의 일자리가 먼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경제성장은 자본 축적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기술 혁신과 같은 것도 자본 없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혁신적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자본 없이는 이것을 구현할 수 없다. 자본에 대한 세금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자원을 직접적으로 줄인다는 점에서 세금의 일반적인 효과보다 더 영향이 클 것이다. 게다가 오늘날 자본은 쉽게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바로 이 이유로 피케티는 글로벌 자본세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모든 나라가 참여하는 세제의 도입이 가능한 일인가. 모든 국가 국민에게 유익하다고 생각되는 자유무역도 모든 국가가 제대로 실행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전용덕 < 대구대 무역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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