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들과 함께한 '2박3일 시간여행'의 마법
서울경찰청 멘토 프로그램
학교 밖 청소년과 냉랭한 첫 만남
이틀 뒤엔 서로 형·동생이라 불러
경찰 "검정고시 등 지속 지원"
[ 마지혜 기자 ] “가족조차 절 믿지 않아요. 형사님도 속으로는 절 그냥 양아치라고 생각하시면서…. 괜히 훈계하려 들지 마세요.”
지난 3월 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서울 광진경찰서에 연행된 A군의 마음은 꽉 닫혀있었다. 학교전담경찰관인 홍성현 경장이 말을 걸자 A군은 “내 인생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데 웬 참견이냐”고 쏘아붙였다. 가출과 절도, 폭행 등을 일삼으며 학교에 나가지 않던 A군은 아버지로부터 “없는 아들로 생각하겠다”는 말을 듣고 울분과 반항심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런 A군이 지금은 확 달라졌다. 대안학교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기술을 가르치는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A군을 바꾼 건 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15일부터 2박3일간 연 ‘학교 밖 청소년과 학교전담 경찰관이 함께하는 시간여행’에서 홍 경장이 A군에게 쏟은 애정과 관심이었다.
여행하면서 형사를 ‘형’으로 부르게 됐다는 A군은 “형 말대로 성적은 안 좋을지라도 성격은 좋은 사람이 될 것”이라고 웃어보였다. 서울청소년문화발전위원회(회장 윤동한 한국콜마 대표) 후원으로 이뤄진 이번 시간여행에는 31명의 학교 밖 청소년과 37명의 경찰관이 함께 추억을 쌓았다.
학교 밖 청소년은 만 19세 미만으로 학령기에 속하지만 자퇴나 퇴학 등으로 학교를 떠난 청소년이다. 홈스쿨링이나 대안학교 입학 등으로 학업을 계속하거나 취업해 자립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비행에 빠지는 청소년도 적지 않다.
7월 기준 소년범 중 학교 밖 청소년의 비율은 45.6%에 달한다. 서울경찰청은 이들의 비행을 예방하고 건전한 사회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취지로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 5월에 이어 두 번째다.
서울청은 평소 여행 갈 기회를 갖기 어려운 경제적 빈곤층, 한부모가정 자녀, 소년범 출신 청소년을 중심으로 참가자를 구성했다. 서울 시내 25개 경찰서의 학교전담경찰관 31명이 각각 1명의 학교 밖 청소년과 멘토·멘티 관계를 맺고 여행 내내 동행했다.
첫째 날엔 함께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을 구경하고 전북 군산 근대문화역사거리를 둘러봤다. 둘째 날엔 순천만 국가정원, 여수 엑스포기념관을 관람한 뒤 카약체험을 했다. 한 배에서 함께 노를 저으며 경찰관과 아이들은 더 가까워졌다.
전북 덕동마을에서 고구마를 캐는 농촌체험활동을 한 마지막 날엔 서로 더 굵은 고구마를 캤다고 자랑하며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얼굴 땀을 닦아줬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몰라 마음의 벽부터 쌓던 청소년들의 마음이 차차 열렸다. 첫째 날 밤 숙소에서 각자 자기 이름을 소개하던 시간, B양은 자기 차례가 오자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담당 경찰관 박선옥 경사는 “OO이가 졸린가보구나”하며 달랬지만 B양은 냉담했다. 하지만 B양에게 계속 말을 걸어주고 관심을 보인 박 경사에게 B양도 결국 마음을 열었다. 사흘을 함께하며 박 경사가 식후에 믹스커피를 찾는다는 걸 알게 된 B양은 마지막 날 점심 “쌤(선생님), 커피 저기 있던데 이따 드세요”라며 수줍게 식당 밖 커피 자판기를 가리켰다.
‘시간여행’ 행사 준비와 진행을 총괄한 길용훈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경위는 “여행 후에도 아이들의 대안학교 입학이나 검정고시, 기술 습득, 학교 복귀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천·군산·순천=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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