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해상, HCC인슈어런스 인수…역대 최대
일본 저금리·인구 감소에 해외서 돌파구 마련
글로벌 보험사 추가 M&A 위해 '실탄' 장전
[ 도쿄=서정환 기자 ] 일본 보험사들이 잇따라 해외 보험사를 사들이고 있다. 인구 감소와 저금리 기조 속에서 일본 시장에만 머무는 ‘우물 안 개구리’로는 더 이상 성장이 힘들다는 판단에 따라 해외에서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일본 최대 손해보험사인 도쿄해상홀딩스가 미국의 HCC인슈어런스홀딩스를 9400억엔(약 9조250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는 등 회사별로 창사 이래 최대 규모에 달하는 M&A가 줄을 잇고 있다.
○창사 이래 최대 M&A 잇따라
올 들어 일본 기업의 해외 M&A 합계액(8월20일 기준)은 7조1685억엔으로, 전년 동기 대비 77% 증가했다. 연말까지 4개월여를 남기고 연간 사상 최대 규모였던 2012년(7조1375억엔)의 기록을 이미 넘어섰다.
이같이 활발해진 일본 기업의 해외 M&A를 주도하는 업종 중 하나가 보험업이다. 도쿄해상홀딩스의 HCC인슈어런스홀딩스 인수액(9400억엔)은 역대 일본 보험사의 M&A 금액 중 최대다.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도 지난 8일 영국 손해보험사인 암린을 6420억엔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2001년 미쓰이스미토모해상이 설립된 이래 최대 M&A다. 또 다른 손해보험사인 재팬닛폰코아홀딩스는 지난 3월 프랑스 재보험사 스콜의 지분 15%(1100억엔)를 인수했다.
손해보험사뿐 아니라 다이이치생명, 스미토모생명, 메이지야스다생명 등 일본의 생명보험사들도 잇따라 해외 대형 M&A를 발표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일본 보험사의 해외 M&A 규모는 275억달러(약 32조6000억원)에 달한다.
최근 일본 보험사 M&A의 특징은 신흥국 중심에서 선진국으로 인수 대상 보험사가 있는 지역이 바뀌고, 이런 이유 등과 연계돼 인수 규모가 커졌다는 점이다. 3년 전만 해도 일본 보험사들은 미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보고 신흥국에 진출하기 위해 중국과 인도네시아 등의 보험사를 적극 사들였다. 하지만 최근엔 미국 유럽 등 선진국 보험사들이 주된 인수 대상이 되고 있다. 신흥시장의 성장만을 기다리기엔 새 성장동력을 찾아야 할 시간이 촉박하다는 판단에서다. 생명보험 시장에서 일본은 ‘게걸음’을 하고 있지만 미국은 앞으로도 연 4% 정도의 꾸준한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성장여력 줄어든 일본 보험시장
일본 보험사들의 실적이 지금 당장 나쁜 것은 아니다. 일본 3대 손해보험사의 2014회계연도(2014년 4월~2015년 3월) 순이익 합계는 사상 최대였다. 아직까지는 경영 환경이 괜찮은 편이지만 인구 감소와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시장 축소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 일본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억2700만명인 일본의 인구는 2020년 이후 급격히 줄어들어 2048년에는 1억명을 밑돌 전망이다. 최근 일본 손보사들의 활발한 M&A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이에 따른 시장 축소에 대비해 해외에서 활로를 모색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분석이다.
이 가운데 도쿄해상의 성공적인 변신은 일본 보험업계에 큰 자극이 되고 있다. 도쿄해상은 2008년 영국 로이즈의 킬른을 시작으로 해외 진출을 가속화했고, 2014회계연도 순이익(2474억엔)의 60% 이상을 해외에서 벌어들였다.
생명보험사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일본 생보사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수입보험료가 연 20% 이상씩 증가할 정도로 고속성장했다. 하지만 이후 한 자릿수 초반대로 급락했고, 2013회계연도엔 전년 대비 감소세를 보이기도 했다.
스위스재보험에 따르면 2013회계연도 일본 생보사의 보험료 수입은 4230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였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보험료 수입(손해보험 포함) 비율은 11.1%로, 세계 평균(6.3%)보다 2배가량 높았다. 추가 성장 여력이 그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생보사들은 일본은행의 대규모 양적 완화 영향으로 자금 운용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3년 양적 완화 이후 연 0.8%대였던 10년물 일본 국채 금리는 연 0.3%대로 떨어졌다. 생보사는 자산의 40% 이상을 일본 국채에 투자한다. 일본생명 등 일부 생보사는 연금보험 등 저축성 상품의 신규 판매를 중지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여전히 배고프다”
최근의 잇단 M&A에도 불구하고 일본 보험사들은 추가 인수에 대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와타나베 고이치 다이이치생명 사장은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덩치를 키워 2020년 글로벌 5대 보험사 순위에 진입할 것”이라며 “2020년 순이익을 3000억엔으로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3000억엔은 2014회계연도 순이익(1424억엔)의 2배 수준이다. 다이이치생명은 이를 위해 북미와 싱가포르에 있는 지역총괄회사가 주도적으로 보험사를 추가 인수할 수 있도록 체제를 전환하고, M&A 권한 대부분을 넘겼다.
일본생명도 일본 내 생명보험 이외에서 나오는 그룹 순이익을 향후 10년간 현재의 10배인 1000억엔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해외 보험사와 자산운용사 인수 또는 출자가 주된 방법이다. 이 회사는 지난 4월 2015~2017년 중기 경영계획을 내놓으면서 해외 보험사 인수에 1조~1조5000억엔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공표했다. 도쿄해상도 “해외 M&A 기회를 추가로 모색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생보사들은 일본 내 보험사 M&A도 모색 중이다. 일본생명은 지난달 미쓰이생명을 인수하기로 했다. 외국계를 포함해 40여개사가 경쟁적으로 영업 중인 일본 생보사는 향후 M&A를 통한 재편 여지가 크다는 관측이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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