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청장에서 세무업계 수장으로 변신
세무사 가까이 두고 자주 상담받는 게 인생의 지혜
전 국민 대상 무료 세무 상담기회 대폭 확대할 것
개인 세금문제 평생 해결 '성년후견인제도' 활성화
세무업계 자정 노력 필요…세무제도 발전에 기여
[ 임원기 기자 ] 백운찬 한국세무사회 회장의 행보는 올 상반기 내내 세무업계의 화제였다.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과 기획재정부 세제실장(이상 1급), 관세청장(차관급)을 거친 고위 관료 출신이 세무사 사무소를 차린 것 자체가 처음이었는데, 한술 더 떠 한국세무사회 회장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선거 과정에서 그의 세무사로서의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그는 지난 6월 네 명이 출마한 회장 선거에서 56%를 득표해 거뜬하게 당선됐고, 지난달 23일 제29회 한국세무사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서울 서초동 한국세무사회 사무실에서 만난 백 회장은 “세금 문제는 개인의 재정적인 건강상태를 보여주는 척도인데 중요성에 비해 평소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소홀히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며 “1만2000여명의 세 セ永湧?국민의 세금주치의가 되도록 나부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차관급 관료 출신이 세무사회 회장에 출마한다고 해서 화제가 됐었는데요.
“작년 7월 관세청장에서 물러난 뒤 선배들로부터 그동안의 관료 경험을 썩히지 말고 민간분야인 세무사회에 가서 그 경험을 살려가면 어떻겠냐는 추천과 권유를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적임자인지 한참 고민했어요. 세무사 활동은 어차피 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세무사회 회장이 된다는 건 완전히 다른 문제잖아요. 고민 끝에 세무 관련 제도 발전을 위해 기여해 보자는 판단이 섰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세무사 사무소부터 열었습니다. 선거에 대비해 사전 교육도 열심히 받았고요.”
▷선거는 처음 치러보셨죠.
“관료 생활만 34년을 했습니다. 당연히 선거는 처음이었죠. 쉽지 않았습니다. 공직생활에서는 항상 1+1은 2잖아요. 하지만 선거는 달랐어요. 선거에서 1+1은 10도 되고, -10도 되더라고요. 궤변이 통하기도 하고, 원칙이 흐려지기도 하고. 그래도 공직생활에서 해온 대로 1+1은 2라는 원칙을 최대한 지키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세무사분들이 그걸 알아준 것 같아요.”
▷세무사 경력이 짧아 거의 기반이 없었을 텐데요.
“세무사회 회원이 1만2000여명에 달합니다. 그중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소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세무사 사무소 3500곳을 일일이 찾아다녔습니다. 두 달 동안 정말 쉬지 않고 돌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너무 어색했죠. 내가 무슨 정치를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먼저 다가갔더니 다들 마음을 열어주셨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얘기를 들을 수도 있었고요. 처음엔 솔직히 ‘선거에서 떨어지면 이게 무슨 망신인가’하는 걱정이 컸습니다. 그런데 세무사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많이 배운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세무사들이 원하는 게 뭐였나요.
“회장이란 자리는 회원들을 대신하는 심부름꾼입니다. 청와대 총리실 국회 조세심판원 세제실 관세청 등 세금 관련 분야에서 골고루 쌓은 경험을 살려 믿음직한 심부름꾼이 돼달라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행정기관이나 국회를 상대로 좀 더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대표자가 필요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고요.”
▷세무업계에 지금 필요한 게 뭐라고 보십니까.
“국민과의 접점을 늘리는 것입니다.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두 가지가 죽음과 세금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그만큼 세금 문제는 사람들이 살면서 반드시 맞닥뜨릴 수밖에 없는 필수적인 것인데도 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무사들 역시 적극적으로 일반 국민의 세금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국민과 세무사 간 소통의 기회를 늘리면 세무사는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돼 좋고, 국민은 골치 아픈 세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모두가 좋은 것 아니겠어요.”
▷세무사는 세금을 많이 낼 때나 필요한 것 아닌가요.
“지금까지는 그랬던 게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인식도 그랬고요. 하지만 올초 연말정산 파동을 겪으면서 많이 바뀌었습니다. 세금에 대한 한국 사회의 관심이 대단히 높아졌어요. 그동안은 양도세, 상속·증여세 같은 부동산이나 재산 관련 세제가 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나 내는 소득세와 부가세 등도 뉴스에 많이 언급되면서 관련 당사자도 늘어났고요. 연말정산 때 정부의 조세정책이 조금만 달라져도 개인의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사람들이 이제 알게 된 거죠. 앞으로 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겁니다. 하지만 세금은 사실 골치 아픕니다. 용어도 생소하고 어렵고요. 일반인이 아무리 관심이 많아도 일일이 공부해 대처하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잖아요. 전문가인 세무사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그걸 열심히 알리려고요.”
▷그래도 일반인이 세무사 상담을 받기엔 좀 부담스러울 텐데요.
“규모가 큰 상속세나 증여세를 낼 때만 세무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생활의 절세 지혜를 구하거나 연말정산 혜택을 받는 데 필요한 것 등을 확인할 때도 세무사의 도움을 받으면 좋지 않겠어요? 금전적인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세무사 한 명을 알아두고 수시로 상담받는 게 생활의 지혜이고, 인생을 슬기롭게 사는 방법입니다. 세무업계에서 세무 상담은 인생 상담이라고들 하죠. 그만큼 개인의 인생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런 걸 어떻게 알릴 생각인가요.
“우선 세무사가 국민을 위한 무료 세무 상담을 확대해야 합니다. 물론 세무사에게 무조건 무료 ?세무상담을 해주라고 하면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어렵겠죠. 그래서 장기적으로 이런 무료 상담을 일종의 재능기부로 인정해주고 재능기부에 대해서도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이 고려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기재부 세제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생각해왔던 것입니다. 외국에서는 재능기부도 기부로 인정하고 세제혜택을 주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꼭 금전적 기부만 기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세무사가 사회에 돈으로 기부하는 것도 좋지만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게 훨씬 효용이 클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법을 바꿔야 하는 사안 아닌가요.
“서울시립대에서 세무학 박사학위를 받을 때 논문 주제가 ‘기부금 과세제도 개선방안’이었습니다. 흔히 한국이 선진국보다 기부문화가 뒤처져 있다고 하는데 이는 국민 정서보다 세제적 측면의 문제일 수 있습니다. 현금이나 물건의 기부에만 세제혜택이 주어지고 있다는 얘기죠. 재능을 기부할 때도 세제혜택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중장기적으로 이런 내용을 정부 당국에도 건의할 생각입니다.”
▷개인맞춤형 서비스도 가능할까요.
“한 사람의 일생 동안 세금 문제를 컨설팅해주고 도와주는 성년후견인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그걸 활성화하기 위해 세무사회 내에 성년후견인센터도 설립했습니다. 세무사와 개인이 계약을 체결하고 평생 그 사람의 세금 문제를 해결해주는 제도입니다. 말하자면 세금 관련 후견인제도인 셈이죠. 선진국에서는 활성화돼 있는데 한국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
▷국세청이 세무사 비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겠다고 하 쨉?
“세무사회가 더욱더 반듯하고 당당하게 되도록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무사회도 자정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격증만 취득하고 본인이 직접 업무를 하지 않고 직원들에게만 맡기는 행태 등은 세무사 스스로 뿌리 뽑도록 막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다수 세무사는 올바르고 정당하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 백운찬 회장은…
백운찬 한국세무사회 회장은 국선도 고수다. 17년째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국선도 수련을 하고 있다. 한동안 도장을 다녔지만 이제는 집에서 혼자 수련한다. 누구한테 배울 필요가 없을 만큼 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국선도 수련을 하고 백팔배를 마친 뒤 출근한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이 있으면 못할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세금과 관련해 입법 행정 각 분야에서 골고루 경험을 쌓은 게 백 회장의 가장 큰 장점이다. 진주세무서를 시작으로 남대구·동대구세무서 등에서 일선 세무행정을 경험했고 조세심판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엔 금융실명제 실무를 맡았고, 기재부 세제실에서는 현금영수증제도 도입에 기여했다. 국장 때에는 근로장려세제 관련 TF(태스크포스)팀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등 한국의 세금 관련 역사에서 굵직한 일을 두루 경험했다.
△1956년 경남 하동 출생 △동아대 법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서울시립대 대학원 세무학 박사 △행정고시 24회 △재정경제부 조세정책과장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국장 △기획재정부 관세정책관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 원장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관세청장
임원기 기자 wonk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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