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 한국-이탈리아 16강전에서 안정환 선수가 골든골을 넣는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은 엄청 많다. 하지만 패색이 짙어진 후반 43분에 넣은 설기현 선수의 동점골은 어떤 평가를 받는가? 아마도 골든골보다는 높게 평가되지 않을 것이다.
지난 7일 여론조사 전문 업체인 한국갤럽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서 전체 응답자의 44%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우리나라를 잘 이끈 대통령’으로 꼽았다. 노무현(24%), 김대중(14%) 전 대통령이 그 뒤를 이었다.
놀라운 것은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4위(3%)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후임 대통령들이 아무리 잘했다 하더라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없었으면 대한민국 건국은 없었을 것이고, 우리 모두 김정은 치하에서 살고 있었을 것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어려서부터 천재였으며, 미 명문 조지 워싱턴대, 하버드, 프린스턴대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일본 내막기(Japan Inside Out)’를 1941년 여름 뉴욕에서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일본의 미국 공격을 예언했고, 같은 해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 공습을 감행하였다. 당연히 예언서가 된 ‘일본 내막기’는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이 전 대통령은 한국인 최초의 미국 베스트셀러 작가에 등극하였다. 74년 전 얘기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업적을 모두 기리자면 책 10권도 모자랄 것이다. 그 중에서 전 세계에서 유일한 제도인 카투사 탄생과 의의를 찾고자 한다. 카투사(KATUSA, Korean Aug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미8군에 증강된 한국군 육군 요원)는 1950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과 더글러스 맥아더 유엔군사령관의 비공식협정에 따라 창설되었다. 6·25전쟁 때 '낙동강 전선을 저지'하고,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이승만 전 대통령의 회심의 카드가 카투사의 창설이었다.
카투사는 대한민국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물론 우리나라에서 중요하지 않은 군부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희생으로 카투사가 가지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 후지산 아래 위치한 미 제7사단 신병교육대에서 단 1주일만 훈련 받은 카투사는 낙동강 전선에 긴급 투입되었고, 같은 해 9월 15일 무려 18,000명의 카투사가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하여 일거에 국군과 유엔군이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공세를 취할 수 있게 해주었다. 1950년 10월 1일 38선을 돌파한 뒤 파죽지세로 북진하여 통일을 바로 눈앞에 두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말 불법 개입한 중공군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용맹한 카투사와 미 1 해병 사단은 자신의 10배에 달하는 12만 중공군의 남하를 지연시겼다. 이 전투가 미국 전쟁사에서 ‘역사상 가장 고전했던 전투’인 장진호 전투이다. 미 1해병 사단은 12월 24일 영화 ‘국제시장’ 첫 장면에서 나온 ‘흥남철수’를 하였다. 이 전투에서 수많은 카투사들이 희생된 것은 불문가지다. 6·25전쟁에 43,000명의 카투사가 첨전하여 무려 9,000명이나 전사하였다.
이에 대하여 버나드 샴포우(Champoux) 주한 미8군 사령관은 "용감하고 의연한 카투사는 적의 기습 남침을 막아내고 한국의 자유를 수호했다"며 "카투사의 헌신은 오늘날 한강의 기적과 같은 위대한 한국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유산"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올해 8월 15일은 광복절 70주년을 맞이하는 뜻 깊은 날이다. 동시에 카투사 창설 65주년을 맞는 날이기도 하다.
포성이 멈추고 한 송이 꽃이 피었네, 평화의 화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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