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2세대까지
혜안과 도전으로 글로벌 기업 키워
[ 서욱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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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강압에서 벗어난 70년 전 한국은 세계에서 최빈국 중 하나였다. 일제가 자원을 수탈해 가면서도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산업화의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6·25전쟁까지 발발, 한동안 외국의 원조에 의존해 국가와 국가 경제를 이끌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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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혜안이 돋보였던 경영자였다. 1938 ?3만원의 자본금으로 직원 40여명과 함께 대구 인교동에 ‘삼성상회’를 만들었다. 1951년 삼성물산을 설립해 자본을 모은 그는 설탕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설탕은 수입 의존도가 높은 고부가가치 제품이었다. 제일제당이 설립된 1953년 100%였던 설탕 수입 의존율은 1년 뒤 51%로, 3년 뒤에는 7%로 떨어졌다. 엄청난 외화를 절약할 수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삼성그룹은 반도체 휴대폰 등을 주력으로 하는 삼성전자를 필두로 지난해 기준 자산 351조원, 직원 50만여명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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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대 창업주의 경영철학은 2세대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신경영 선언’으로 삼성의 운명을 바꿨다. 일본 제품 베끼기에 급급했던 삼성 제품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반도체사업을 시작한 것도 이 회장의 결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은 ‘역발상 경영’이 돋보였다. 외환위기가 한창인 1998년 기아자동차를 인수한 것이 대표적이다. 정 회장은 기아차를 1년 만에 흑자로 돌려세웠다. 또 전 세계 시장으로 수출해 글로벌 자동차 회사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구본무 LG 회장은 뚝심 있게 미래 기술을 개발해 한국 산업의 ‘먹거리’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 회장은 GS, LS, LIG, LF 등을 계열분리하고도 매출을 30조원대(1994년 말)에서 150조원대(2014년 말)로 5배 키웠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석유화학, 보험, 태양광산업 등을 과감히 추진하며 재계에서 ‘한화그룹을 한 번 더 창업한 경영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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