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휘 금융부 기자)
“예상보다 작은 지분이긴 하지만 일단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위한 한국금융지주·다음카카오 컨소시엄에 지분 10% 만큼의 투자금을 대기로 한 대형 시중은행 A사 임원의 말입니다. 그런데 정작 다음카카오 컨소시엄 관계자는 “시중은행 5곳에 제안을 했고, 어떤 은행을 택할 지는 아직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는 반응입니다.
인터넷전문은행(지점없는 은행)의 면허 쟁탈전에서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심지어 제휴 은행을 고르기 위한 제안서도 한국금융지주가 아닌 다음카카오가 보냈다고 합니다.
은행 지주사들은 다음카카오의 한 마디에 인터넷전문은행 담당 부서를 바꿀 정도입니다. 신한, 하나, KB, 농협 등 은행지주사들은 신설 인터넷전문은행을 지주사 밑에 자회사로 두는 방안을 추진해왔습니다. 하지만 다음카카오가 ‘10%라도 투자하겠나’라고 제안하면서 일이 꼬여버렸습니다. 지주사가 투자하려면 금융지주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 규정상 최소 30% 이상을 가져야 한다는 규정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일부 은행지주사들은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의 주체를 지주사에서 각 은행으로 변경하고 있는 겁니다. 신한은행만해도 언론에 신한은행이 인터넷전문은행에 진출한다고 나오면 꼭 전화해 “은행이 하니라 지주가 하는 일이니 정정해 달라”고 요청하더니 다음카카오의 말 한마디에 인터넷전문은행 투자를 맡게됐습니다.
지난 6월 금융위원회가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발표할 무렵에도 다음카카오는 유력 후보로 꼽혔습니다. 다만, 산업자본으로 분류돼 현행 은행법 아래에선 은행 지분을 최대 10%밖에 보유할 수 없는 터라 컨소시엄 구성의 주도권을 쥘 정도는 아니라고 평가됐습니다. 미래에셋증권, 한국금융지주, 교보생명 등 제2금융권에 속하는 증권·보험사들이 각각 주축이 돼 다음카카오 등 ICT(정보통신기술) 기업들을 간택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이 예상은 빗나간 것으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한국금융지주와 다음카카오의 연합만해도 다음카카오가 한국금융지주를 선택한 것이라는 게 금융업계의 관전평입니다.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은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부회장,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양쪽을 오가며 제휴 협상을 벌였습니다. “7월 말까지만해도 미래에셋과 손을 잡을 것이라는 게 정설이었는데 막판에 반전이 이뤄진 것”이라는 게 시중은행 관계자의 말입니다.
한국금융지주는 다음카카오를 잡기 위해 인터넷전문은행의 비즈니스모델 구축에 관한 권한을 다음카카오측에 상당 부분 일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미래에셋증권은 다음카카오가 한국금융지주와 제휴하기로 결정한 이후에도 러브콜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을 정도입니다.
슈퍼갑으로 올라선 다음카카오의 위상은 이제 금융 경쟁이 더 이상 낡은 틀에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이 금융에서도 우위를 점할 것이 遮?얘기입니다. 신세계,롯데 같은 유통업체들도 플랫폼을 확보한 기업들로 분류됩니다만, 이들은 대기업 산업자본이라 금융업에 진출하기가 불가능합니다.
SK텔레콤 등 통신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네이버가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이유로 은행 진출을 포기한 상황에서 다음카카오만이 유일한 플랫폼 사업자로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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