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산이 가깝고 달이 먼지라 달이 작게 느껴져/ 사람들은 산이 달보다 크다 말하네/ 만일 하늘처럼 큰 눈 가진 이가 있다면/ 산이 작고 달이 더 큰 것을 볼 수 있을텐데(山近月遠覺月小 便道此山大於月 若人有眼大如天 還見山小月更闊).’ 명나라 시인 왕양명이 산에서 달을 보고 읊은 ‘폐월산방시(蔽月山房詩)’다. 공간에 대한 인식 편향(偏向)을 잘 묘사했다.
시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조선 중기 이옥봉은 ‘칠석’이란 시에서 견우직녀를 ‘만나고 또 만나고 수없이 만나는데 무슨 걱정이랴/ 뜬구름 같은 우리네 이별과는 견줄 것도 아니라네/ 하늘에서 아침저녁 만나는 것을/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이라 호들갑을 떠네(無窮會合豈愁思 不比浮生有別離 天上却成朝暮會 人間作一年期)’라고 노래했다.
시공간에 대한 인식의 편향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도 나타난다. 가장 흔한 게 확증편향이다. 자신의 선입관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수용하고 유리한 정보만 선택하면서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정부 각료나 군 지휘관, 단체장 등도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져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국가 정책이나 미래 세대를 위한 백년대계를 마련할 때에도 진영논리에 갇혀 청맹과니가 되는 일이 허다하다.
보통사람이라고 다르지도 않다. 정치적 성향에 따라 호불호나 찬반 주장이 그렇게 나뉜다. 국가대항 스포츠에서는 집단적인 편향인식 때문에 폭력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생각의 오류라는 덫에 걸리면 선택편향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잘못된 표본 선정으로 결과를 왜곡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여론조사 때 미묘한 질문 차이로 편향된 결과를 유도하기도 한다. 물가에 관한 인식 역시 그렇다. 열에 아홉은 “물가 때문에 못 살겠다”고 난리다. 장기불황을 걱정하는 저물가 시대가 3년 넘게 이어지는데도 체감 물가는 늘 천정부지라고 우긴다.
좀 덥다 싶으면 “살인적인 더위”라고 법석을 떠는 체감기온 편향도 이와 비슷하다. 입시철 ‘수능 한파’ 호들갑과 다를 바 없다. 최근 통계를 보니 7월 전국 평균기온이 24.4도로 작년(25.1도)보다 0.7도나 낮고, 평년(24.5도)에 비해서도 0.1도 낮았다. 찜통 도시라는 대구도 평균 25도로 평년(25.8도)보다 0.8도 낮았다. 33도를 넘는 폭염일도 예년보다 적었다.
그런데도 언론은 “사상 최악의 폭염”이라는 극언으로 대중의 귀와 눈을 자극한다. 무엇이든 극단과 치우침은 경계해야 한다. 꼭 ‘하늘처럼 큰 눈’이 아니어도 산과 달의 크기 정도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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