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24일 제네바서 협정 타결
사전 브리핑·설명도 없이 5쪽짜리 참고보도자료만 내
일부 언론들 오보 초래…시장, 정확한 정보 못 얻어
김재후 경제부 기자 hu@hankyung.com
[ 김재후 기자 ] 지난 24일 밤 11시27분. 산업통상자원부는 “정보기술협정(ITA) 확대협상 품목리스트 최종합의 보내드림”이라고 적힌 문자메시지를 출입기자들에게 뿌렸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가운데 한국을 포함한 52개국 대표들이 앞으로 관세를 철폐할 201개 정보기술(IT) 품목에 대해 최종합의를 마치고 한 시간여가 지난 뒤였다.
다섯 장 분량(A4용지)의 보도참고 자료엔 무관세품목 리스트와 ITA의 의미, 향후 일정 등이 있었다. 표로 정리된 품목 리스트를 제외하면 지난 21일 월례행사인 통상정책 정례브리핑에서 10개 통상현안 중 하나로 언급되면서 적힌 내용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산업부는 통상 정례브리핑과 이날 보도참고 자료에서 ITA 확대협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WTO 체제 하에서 1996년 1차 합의 이후 19년 만에 타결된 다자간 관세철폐협상”이라며 “201개 IT 품목에 대한 한국의 수출은 1052억달러(2013년 기준)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산업부의 설명대로 ITA 협상이 갖는 의미는 컸다. 한국경제신문은 다음날인 25일자에 ‘TV부품·셋톱박스 등 대중(對中) 수출 관세 없어진다’고 A8면 머리기사로 보도했고,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주요 외신도 1면 머리기사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정작 산업부의 행보는 이런 설명과 맞지 않았다. 한국 수출의 5분의 1이 걸려 있는 국제기구 협상에 대한 사전브리핑도 없었다. 최종합의가 이뤄진 날이나 3일이 지난 27일에도 관련 브리핑은 열리지 않았다. 별도 자료도 없었다. 암호 같은 관세코드로 채워진 보도참고 자료가 전부였다.
협정 결과를 분석해야 할 한국무역협회에도 24일 밤에야 협정 결과만 통보했다. 협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전자회사 중엔 협정 결과를 통보받지 못한 채 언론을 보고 안 경우도 꽤 된다고 한다.
시장에선 ITA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다. 산업부가 발표한 무관세 품목엔 ‘TV 등 부분품’으로 모호하게 적혀 있어 주말 동안 방송 뉴스는 물론 27일자 아침 조간신문에도 ‘ITA 최종합의로 TV 등 수출 증가’ 식의 보도가 꾸준히 나왔다. ‘TV 등 부분품’은 ‘TV 등에 쓰이는 부품’을 일컫는다. 일반적인 TV는 포함되지 않는다. 주무부처의 무관심 속에 오보만 양산된 것이다.
주식시장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TV 등 부분품’을 만드는 회사가 어딘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무관세를 적용받는 메모리반도체가 또 포함됐다는데 이건 무슨 의미인지도 불명확했다. 산업부 담당자에게 물어도 “대기업도 만들고 중소기업도 많이 만든다”거나 “관세코드가 그렇다”는 등의 모호한 답변밖에 들을 수 없었다.
산업부는 이번달에만 60개의 보도자료를 낼 예정이다. 예정치 않은 자료 등을 합치면 이보다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대개 홍보성 자료다. ‘실적 쌓기용’으로 많은 자료를 내기보다 국가 경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더 집중하는 게 낫지 않을까.
■ 정보기술협정(ITA)
정보기술(IT)제품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 간 관세를 철폐하기 위한 협정이다. 1996 년 처음 합의해 컴퓨터 휴대폰 등 203개 품목에 무관세를 적용했다. 한국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52개국은 무관세 품목을 늘리기 위해 2012년 5월부터 확대협상을 벌였고, 이번 17차 협상에서 201개 품목을 추가했다.
김재후 경제부 기자 h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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