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격동
마사 누스바움 지음 /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전 3권 / 1352쪽 / 5만5000원
[ 김보영 기자 ] 에밀리 브론테의 소설 《폭풍의 언덕》의 남자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잔혹한 성품을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 끊임없이 학대를 당했던 언쇼 가(家)에 장성한 모습으로 찾아와 표독스럽게 복수한다. 히스클리프가 사랑하는 캐서린이 시집간 린튼 가마저 풍비박산을 낸다. 지방 유지로서 교양 있는 삶을 살아가던 두 가문의 사람들은 히스클리프의 광기에 벌벌 떤다.
하지만 독자는 무뚝뚝하고 고집스러운 히스클리프의 순수함에 마음이 끌린다. 미국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눈에 보이는 히스클리프의 폭력성보다 언쇼·린튼 가로 대표되는 당시 영국 명망가의 기독교적 자비심이 더 잔인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동정심과 인정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자기방어적이고 얄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히스클리프를 증오할 수 없다면 소설은 낭만주의적 사랑의 본질을 묘사하고 변호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에 담긴 ‘감정 탐구’ 사례 중 하나다. 세 권으로 나눠 출간된 방대한 鈞??이 책은 인간의 감정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세심하게 살피고, 그 원인을 파헤친 감정 비판서다. 문학과 철학, 심리학,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례를 뽑아 감정과 그 원천을 탐구하고 유아기부터 꾸준히 형성되는 감정의 변형과 성숙을 들여다본다.
발리에 살았던 노르웨이 인류학자 위칸은 휴가를 요청하는 가정부의 얘기를 듣고 거짓말이 아닌가 의심했다. 생글생글 웃으며 약혼자의 장례식에 가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후에 그는 발리 사람들이 상실을 겪었을 때 슬픔을 애써 느끼지 않고 행복한 사건에 초점을 맞추려 노력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회적 규범 안에서의 감정 발달은 1권 ‘인정과 욕망’이 다루는 큰 주제 중 하나다. 유아기에 형성되는 감정 체계, 동물과 인간의 감정 차이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2권에선 연민의 감정을 다룬다. 연민이 없으면 각종 도덕 이론에 빠삭해도 실제 행동과 신념 사이에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동을 할 때도 연민은 기초 감정으로 작용한다. 연민을 인지하기 위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 가지 필수 요소부터 시작해 이방인에 대한 공감의 결여가 이뤄지는 과정을 자세히 그린다. 수치심과 질투심, 혐오감 등 연민의 감정을 가로막는 장애물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단테와 브론테, 말러, 휘트먼 등의 텍스트 속에서 기독교적·낭만주의적·민주주의적 사랑을 찾는 일종의 사례 연구가 3권을 이룬다. 저자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입을 빌려 감정이 ‘상념의 지형학적 융기’임을 강조한다. 이유 없이 분출되는 예측 불가능한 영역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신념보다 감정을 더 신뢰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감정 이론의 개발 없이 윤리 이론의 개발이 완성될 수 없는 이유다.
김보영 기자 w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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