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기자의 생생헬스 - 노년층 폭염 대비법
급격한 생리적 변화에 취약…과도한 땀 배출, 고혈압·뇌졸중 유발
물 자주 마셔 배출된 수분 보충…당뇨병 환자, 과일 대신 채소 섭취
한낮 격렬한 야외 운동은 피하고 그늘에서 충분히 휴식 취해야
[ 이준혁 기자 ]
아시아 전역이 폭염(暴炎)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중국은 이번주 들어 수도 베이징이 낮 최고 기온 42.2도를 기록하는 등 살인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본도 대부분 지역의 낮 기온이 38도까지 올라 열사병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은 이번주 내내 경기와 강원 지방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졌다. 주말 동안 태풍 등의 영향으로 더위가 잠시 주춤하겠지만, 다음주 다시 폭염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오는 23일 대서(大暑), 중복(中伏)을 전후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릴 전망이다.
절기상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흐르고 저녁에도 더워 잠들기가 쉽지 않은 시기다. 밤에는 최저 기온이 25도를 넘는 열대야 현상이 심해진다. 후텁지근한 무더위와 복더위는 노년층과 고혈압·심혈관질환을 가진 만성질환자들의 건강을 위협한다.
권태감, 피로, 무의식 상태로 이어져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지난해 폭염 사망자는 7월 중순부터 나왔고, 사망자는 모두 70대 고령자로 평소 고혈압과 협심증을 앓고 있었다. 찜통더위가 계속되면 우리 몸에도 생리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특히 신경계 장애로 이어지기 쉽다. 피부로 혈류량이 쏠려 뇌혈류량이 부족하면 대뇌피질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 이로 인해 권태감이나 피로감, 무의식 상태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또 땀을 많이 흘리면 수분과 함께 염분이 방출돼 탈진으로 이어진다.
폭염은 수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기온이 오를수록 잠자는 동안 심박수가 증가하고 몸 움직임이 잦아져 깊은 잠에 들지 못한다. 신철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교수는 “열대야가 반복돼 수면이 부족해지면 일상생활 리듬이 깨지고 낮시간의 피로감이 심해져 작업능률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스트레스로 혈압이 높아지고 면역기능이 떨어져 고혈압,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가 조사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면시간이 5시간 미만인 사람은 6~7시간인 사람보다 고혈압 발병률이 1.5배 높고 심근경색, 뇌졸중과 같은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무더운 여름철 수면장애를 극복하려면 잠자는 방의 온도를 수면에 알맞은 18~23도로 유지해주는 것이 좋 ? 수면을 취하기 2~3시간 전 가벼운 운동(산책, 줄넘기 등)을 하고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면 수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장 이상적인 수면주기는 오후 11시 이후부터 오전 7시 전후다.
물 자주 섭취해 체온 내려야
폭염이나 열대야가 시작되는 ‘첫날’에 유난히 노년층 사망자가 많다. 특히 치매, 뇌졸중, 파킨슨병 등 뇌질환을 앓는다면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거동까지 불편해 시의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일사병 및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는 것을 비롯해 심장질환, 고혈압, 당뇨병, 호흡기질환, 사고, 경련 등으로 인한 사망률이 2배 가까이 치솟는다.
일사병은 무더운 여름철 강한 햇볕에 오랫동안 노출됐을 때 발생하며 두통과 함께 현기증이 나타난다. 일사병보다 더 무서운 열사병은 무더위로 체온이 40도 넘게 올랐지만 몸의 열을 내보내지 못할 때 발생한다. 열사병은 뜨거운 햇볕이 아니더라도 과격한 운동을 하거나 더운 곳에서 일할 때 체온이 40도 이상 올라갈 경우 발생한다.
열사병은 폭염에 취약한 노년층, 만성질환자나 약물중독자, 영양결핍자 등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젊고 건강해도 실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나 장거리 마라톤 선수, 야외에서 고된 훈련을 하는 군인에게서도 열사병이 발병한다. 한낮에 4시간 이상 햇빛과 열기에 노출되는 골프도 열사병과 일사병에 걸릴 위험이 높다.
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열사병이 발병하면 즉시 움직임을 멈추고 서늘한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고 말했다. 먼저 응급치료로 체온을 39 ?이하로 떨어뜨릴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환자를 서늘한 곳에 누이고 탈의시킨 후 환자의 몸에다 물을 조금씩 뿌리면서 부채를 부치거나 선풍기를 틀어준다. 필요하면 심폐소생술을 시행한다.
조 교수는 “열사병은 고온에 장시간 노출되면 인체의 체온조절을 담당하는 기관에 고장이 생겨 나타난다”며 “인체 정상 온도인 37도보다 높은 41도 이상 올라갈 경우 고열과 함께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데 즉시 치료하지 않으면 사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일사병이 의심되면 서늘한 곳에서 쉬도록 하면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도록 하는 게 좋다. 차가운 물로 샤워를 하거나 목욕하는 것도 좋고, 증상이 심할 경우 병원에서 수액주사로 수분과 염분을 보충하면 도움이 된다.
낮 활동 삼가고, 영양 보충 잘해야
탈수 예방을 위해 물도 충분히 마셔야 한다. 통상 탈수 땐 갈증과 함께 소변량이 감소한다. 따라서 폭염 땐 노년층 본인과 보호자는 소변을 평상시처럼 보는지를 살펴야 한다. 건강한 노년층은 3~4시간마다 한 번씩, 전립선 비대증 등 비뇨기 질환이 있을 땐 이보다 훨씬 자주 화장실에 간다.
젊은이들은 땀과 함께 빠져나가는 염분을 보충하기 위해 이온음료를 마셔야 한다. 하지만 노년층은 미각이 감퇴한 탓에 평상시 음식을 짜게 먹기 때문에 따로 염분을 보충할 필요 없이 물만 마셔도 된다. 물론 평상시 싱겁게 먹는 사람이라면 가끔씩 물 대신 이온음료를 한두 잔 마셔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부지런한 신체 활동은 노년층 건강의 필수 요건이다. 하지만 여름철 한낮은 예외다. 걷기 등 가벼운 운동이나 스트레칭도 낮 시간은 피하는 게 좋다. 여름철 신체 활동은 새벽이 가장 좋다. 만일 더운 날 갑자기 기운을 못 차리고 눕거나 쓰러질 땐 즉시 응급실로 이송해야 한다.더위로 인해 뇌의 체온조절 중추가 고장나면서 체온 자체가 급속히 올라가는 열사병에 빠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교수는 “여름철엔 노년층 역시 신진대사가 증가하므로 영양 보충이 꼭 필요하다”며 “칼로리 보충을 위해 생선, 닭(껍질보다 흰 살), 달걀, 우유, 콩 등이 좋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노년층은 이열치열(以熱治熱)식 더위 극복은 금물”이라며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탕을 먹는 일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당뇨병 환자는 과일에 당분이 많다는 점을 유념해 채소 위주로 먹는 게 좋다.
도움말=조비룡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김광일 분당서울대병원 노인의료센터 교수, 신철 고려대 안산병원 수면장애센터 교수
이준혁 기자 rainbo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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