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행정비용 상상 못할 정도…감사원 감사가 도리어 뇌물 핑계
일 안 하는 공무원부터 감사해야…그것이 규제 완화의 지름길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수입차 환경인증을 담당하던 공무원이 상습적으로 뇌물을 받다가 구속됐다. 공직사회가 얼마나 썩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사건이다. 수법 자체가 단순하다. 수입차 회사가 인증을 신청하면 15일 이내에 가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신청 자체를 받지 않았다. 질질 끌다가 마지못해 신청을 받은 뒤에는 서류 미비를 이유로 돌려보냈다. 그 다음은 어떻게 됐을까.
자동차도 한철 장사다. 신차라도 론칭 시점을 놓치면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그런데 환경인증을 받지 못했다. 어쩌겠는가. 급행료가 동원됐다. 113번에 걸쳐 3200만원 상당의 금품이 건네졌다. 접대성 해외출장 강요, 유흥업소 향응 요구, 터무니 없는 차값 할인 등의 비리는 양념이다. 영장에 기재된 내용만 이 정도다.
이런 공무원이 한 사람뿐이라면 다행이겠다. 하지만 생각해보라. 주변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섣부르고 재수 없는 공무원만 꼬리를 밟힐 뿐이라는 얘기가 괜히 있겠는가. 공무원 네 명 가운데 한 사람은 스스로 ‘공무원은 부패했 ?rsquo;고 답할 정도다. 정부 조사 결과다. 민원인은 오죽하겠는가. 부패지수가 아프리카 수준인 세계 40~50위권이다. 할 말이 없다.
민원인들은 참는 데 익숙하다. 울화가 치민다고 괜한 부스럼을 만들었다간 사업을 통째로 말아먹을 수도 있어서다. 하긴 이번 사건도 국내 기업이 사냥감이었다면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외국 기업의 현지법인이 유럽연합(EU) 대표부에 단체로 호소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EU가 외교 채널을 통해 한국의 공무원을 불공정 무역장벽이라고 공식 항의한 결과다.
사실 인허가를 받기 위해 일선 관청에 가보라. “안 된다”는 답부터 들어야 한다. 서류는 처음부터 받아줄 생각이 없다. 법이나 조례가 인허가를 보장한다 한들 담당 공무원이 안 된다면 안 된다. 관청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것이 민원인의 할 일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한다 싶을 정도가 돼야 공무원의 태도가 다소 바뀐다. 짜증이다. “정말 왜 이러세요. 그만 찾아오세요.” 그래도 물러서면 안 된다. 달달 볶아야 한다. 그때 무기가 등장한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감사원 감사다. “나는 감사원 감사의 대상이 되기 싫다”는 마지막 레퍼토리다.
법과 조례가 허용한 것도 공무원이 허용하면 감사 대상이 된다. 적극적인 유권해석을 특혜로 인식하는 곳이 감사원이다. 소신껏 일하다간 다치기 십상이다. 일하면 감사 대상이 되는데, 무엇하러 일을 하겠는가. 감사원 감사에 대한 피해의식이 일선 공무원들 사이에 팽배하다.
민원인들은 여기서부터 허송세월을 한다. 사업에 차질이 빚어진다. 마지못해 뇌물이라는 수단을 고민하는 때가 이즈음이다. 사업 지연으로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뭐가 아깝겠는가. 일하는 공무원을 타깃으로 삼는 감사원 감사는 결국 공무원을 복지부동으로 만든다. 뿐만 아니다. 부패를 조장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감사원이 본연의 업무인 회계 감사나 비리 색출에서 벗어나 정책 감사라는 비정상적인 업무에 몰두하면서 빚어지는 부작용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게리 베커 교수는 부패의 직접적인 원인을 규제와 공무원의 재량권이라고 지적했다. 공무원이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재량권이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권한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것이라는 사실을 늘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주인(국민)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권한을 대리인(공무원)이 제멋대로 행사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오히려 주인이 대리인에게 절절매는 꼴이니.
감사원은 엊그제도 해외자원개발 감사 중간결과라는 것을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부 비난에 몰두했다. 하지만 일반 국민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명박 정부가, 박근혜 정부가 뭘 했건 그게 나에게 뭐 중요한 일인가. 내가 신청한 민원은 왜 오늘도 처리되지 않는 것일까. 뇌물이라도 먹여야 하는 것 아닐까. 그게 중요할 뿐이다. 공직사회는 그렇게 전방위로 혼탁해지고 경제는 규제의 틀에 갇혀 침체의 늪을 헤매고 있다.
공무원을 일하게 하라. 그것이 바로 국민이 원하는 규제 완화다. 일하지 않는 공무원부터 감사해야 하는 이유다.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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