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지키는 행위는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
'계포일낙(季布一諾)' 정신 본받아 신뢰의 사회 구축해야
강영호 < 특허법원장 kang@scourt.go.kr >
계약 후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이것이 계약의 구속력이다. 법학에선 계약을 지켜야 하는 이유로 인간의 존엄성을 든다. 즉 존엄한 인간끼리 맺은 계약은 지켜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계약한 것을 지켜야만 인간의 존엄성이 유지된다는 것이다.
약속은 어떤가. 약속은 계약보다 훨씬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존엄한 인간끼리 한 것이란 점은 동일하다. 약속을 지켜야만 존엄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들이 출마하면서 공약으로 내세운 것도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이다. 이를 지키지 못한다면 스스로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이웃과 친구, 가족에게 한 약속도 모두 지켜져야 한다. 이것이 자신의 존엄성을 유지하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 사회에서 이런 약속들이 무시되는 경우를 너무나 많이 보고 있다.
중국 ‘사기(史記)’엔 계포(季布)라는 인물이 나온다. 그는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의 상징이다. 계포는 초나라 출신으로 의협심이 강해 한 번 약속을 하면 사소한 것이라도 반드시 그것을 지켰다고 한다. 계포는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가 천하를 걸고 싸울 때 항우 휘하의 장수로서 수차례 유방을 괴롭혔다. 항우가 패망하고 유방이 천하를 통일하게 되자 계포는 쫓기는 몸이 됐고, 그의 목에 1000 금의 현상금이 걸렸다. 그러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누구 하나 고발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한 고조 유방에게 천거까지 했다. 덕분에 계포는 사면과 동시에 낭중 벼슬을 얻었고, 혜제 때는 중랑장에 올랐다. 계포의 일화는 ‘계포일낙(季布一諾)’이란 한자성어로 길이 남았다.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도 계포와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요즘은 불신의 시대다. 오늘 한 약속을 내일 뒤집고, 공개하지 않기로 한 내용을 서로 공개하며 비난하고 있다. 국민은 정부를, 여당은 야당을, 야당은 여당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혼란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 모두 반성할 부분이다. 성숙한 민주사회는 서로를 믿고 존중해 주는 사회다. 이런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이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약속을 지키는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강영호 < 특허법원장 kang@scourt.g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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